한국일보

캐년은 자연의 위대함을, 댐은 인간의 대단함을…

2019-06-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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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곡 틈으로 걸어들어가 변화무쌍한 암벽을 느끼는 앤텔롭 캐년은 환상 그 자체

▶ 나바호 인디언들 모습에선 애틋한 마음이 오래도록…

캐년은 자연의 위대함을, 댐은 인간의 대단함을…

Glen Canyon Dam.

미 서부 캐년 주마간산기

셋째 날이 밝는다. 06시에 일어나 호텔 구내에서 식사를 하고, Antelope Canyon을 찾아 간다. ‘Navajo Indian Reservation’ 내에 위치하고 있어 전적으로 그 부족원들의 안내를 받아야 하는 선택관광($70)이다. 주차장에 도착(07:40)하여 여러 대의 밴으로 나누어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우리 내외는 Tina라는 중년 여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게 된다. 활달한 성격의 따뜻한 여인이다. 지난 주에 Pasadena의 BTS공연에도 친구들과 함께 몰려 갔을 정도로 K-pop에 열광한다는 딸을 포함하여, 자녀가 다섯이란다. 한국인에 대해 친밀한 감정을 가진 여인이다.

몇 개의 조로 나뉜 우리를 부족민 가이드가 각기 조 단위로 인솔하여 캐년의 협곡안으로 들어간다. David이란 청년이 우리 조의 가이드이다. 체격이 크고 잘 생겼다. 인상이 부드럽고 한국어도 짧은 단어 위주로 적절히 잘 구사하여, 서로 금방 친밀감이 우러난다. 이 Antelope Canyon은 거리를 두고 멀리에서 전망하는 Zion Canyon, Bryce Canyon식의 그런 원격관광이 아니다. 사람이나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미궁’이랄 수 있을 그런, 가파르게 깎인 협곡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며 양쪽 암벽을 손으로 만지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그런 밀착관광, 체험관광이다. 변화무쌍한 곡선들로 이루어진 붉은 암벽들이 휘어지고 뒤틀리고 감기고 펴지며 환상의 세계인양 뻗어있는 협곡 틈을 다니다 보니, 마치 지구의 여신 ‘Gaia’의 내장 속을 탐사하고 있는 기분이다.


사진 찍기에 좋은 지점에서는 David이 자청하여 사진을 찍도록 권하고 또 직접 셔터도 눌러준다. David가 ‘TAADIDIIN’이라는 글자가 인쇄된 옷을 입고 있어 그 뜻을 묻는다. ‘옥수수 화분(Corn Pollen)’을 의미하며, Navajo부족 고유의 문화가 서려있는 말인데,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옥수수 화분’은 부족의 여인들만이 채취할 수 있다는 전통이 있으며, 이를 조그만 주머니에 담아 지니면, 안녕과 행운이 따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단다.

Navajo Indian Reservation(The Navajo Nation)은 오래 전인 1868년에 설정되었는데 그 면적이 약 71,000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71%에 해당하는 넓은 면적이다. 부족민의 숫자는 약 360,000정도이다. 미국 연방법의 규정 이외에는, 완전히 자치적으로 법과 행정이 제정되고 집행된다. 백인들과의 투쟁의 역사에서, Apache에 불굴의 전사 Geronimo가 있었다면, Navajo엔 Manuelito가 있었단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의 안내를 맡고 있는 7~8인의 부족민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한결같이 푸근하고 소탈한 모습이어서, 애틋한 마음을 지닌 채, 이곳을 떠난다(09:00).

20여분을 또 달려 닿은 곳은 Colorado강을 막아 건설한 Glen Canyon Dam과 Rainbow Bridge이다. Grand Canyon이라는 대협곡이 시작되기 바로 전의 Colorado강의 상류이다. 이 댐으로 하여 Lake Powell이라는 방대한 호수가 조성됐고 또 거대한 수력발전소가 생겼다. 댐의 길이가 475m, 높이는 216m인데, 위에서 내려다 보니 참으로 웅장하다. 411만 입방미터의 콘크리트가 투입되었다. 1963년 건설 당시의 화폐로 댐과 발전소 건설에 2억8천만 달러가 들었다는데, 2015년의 화폐가치로는 22억 달러에 상응하는 막대한 자금이다. 약 3000만명이 이 호수의 물로 생활하며, 댐의 만수시 호수의 길이는 186마일에 달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Arizona, Colorado, Nebraska, Nevada, New Mexico, Utah, Wyoming 의 7개 주, 500만 수용가에게 공급된다.

발전방식이 특이하다는 캐빈씨의 설명이다. 댐의 상단에서 흘러 떨어지는 물의 힘이 아닌, 강한 수압을 받는 댐의 아랫부분에서 방출시키는 물의 힘으로 터빈을 돌린다. Antelope Canyon을 찾아갈 때, 사막의 한 가운데에 덩그랗게 서서 검은 연기를 뿜어 올리던 화력발전소 ‘Navajo Generation Station’이 225만 KW, 이곳 Glen Canyon Dam이 129만 KW의 전력을 생산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이 서부 관광은 Grand Canyon, Zion Canyon, Bryce Canyon 등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하는 동시에, Las Vegas, Lake Powell, Glen Canyon Dam 등을 통해 인간의 대단함도 느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곳 댐의 부속시설인 ‘Carl Hayden Visitor Center’에 전시되어있는 댐과 관련된 자료사진중에 Norman Rockwell(1894~1978)의 그림이 있어 반가왔다. 평범한 우리네 서민들의 꾸밈없는 일상의 순간들을 아주 재치있고 정감이 넘치게 그려낸 민중의 화가답게, 어느 Navajo 가족이 Glen Canyon Dam과 Rainbow Bridge를 높은 곳에 올라 굽어보고 있는 소박한 정경을 그렸다.
캐년은 자연의 위대함을, 댐은 인간의 대단함을…

Glen Canyon Dam과 Rainbow Bridge를 굽어보는 Navajo 가족(Norman Rockwell의 그림).


다시 차로 20분 쯤을 달려 Page라는 도시의 식당 ‘Mandarin Gourmet’에서 부페식 점심을 먹는다(10:00). Page라는 이 곳은 Glen Canyon Dam 건설공사에 동원된 인부들과 그 가족들이 머물면서 조성된 곳인데, 현재는 연간 300만명이 찾아드는, 거주인구 7000명의 도시로 견실히 성장해 있다고 한다.

이제 대망의 Grand Canyon이다. National Park의 입구를 거쳐 Mather Point에 차가 선다(13:50).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자연미가 손상되지 않고 영구히 잘 보전되도록 미국의 국립공원들의 정책근간을 수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Stephen Tying Mather(1867~1930)’를 기념한 전망처이다. 과연 세계적인 명소답게 관광객이 넘쳐난다. 난 오늘로 이곳이 4번째가 된다. 작년 5월에는 9명의 Sierra Club멤버들과 함께, South Rim의 Bright Angel Trailhead에서 North Rim의 Kaibab Trailhead까지 종주하는 하이킹을 했는데, 23.8마일, 8421’ Gain에 11시간 49분이 걸렸었다.

약 45분을 머문 Mather Point를 떠나, Imax영화관에서 차를 내린다(15:00). 1984년에 National Geographic사에서 “Grand Canyon: The Hidden Secrets”라는 제목으로 만든 영화이다. 1989년에 회사원으로 미국 연수중에 이곳에 와서 처음 본 내용 그대로이나,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오히려 더 실감이 나고 또 그 내용도 훨씬 더 풍부하지 싶다. 특히 1869년에 John Wesley Powell과 그 일행이 목숨을 잃어가며 보트를 타고 Grand Canyon과 Colorado강을 탐사했던 모험을, 115년 뒤인 1984년에 Daniel T. Majetich와 8인의 용사들이 그를 그대로 재현하는 과정이 생생한 영상으로 담겨진, 참으로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영상이다.


Grand Canyon을 뒤로 한 후, Kingman을 거치며 3시간 여가 지나서 Colorado 강변에 위치한 Laughlin의 Harrah’s Hotel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19:35), Buffet로 저녁을 먹는다. 이곳은 1940년대에 광산노동자와 댐 건설 인부들을 상대로 하는 Motel이나 Bar를 중심으로 작은 타운이 형성되었으나, 1950년대에 댐 건설공사가 끝나자, 타운 전체가 거의 버려지게 된다. 그러다가 1964년에 Don Laughlin이란 Las Vegas의 호텔사업가가 이곳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큰 호텔을 짓는 것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여기에서 도시의 이름이 비롯된다. 지금은 9개 이상의 대형 호텔이 건립되어 있어, 객실이 10,000개가 넘으며, 이곳 호텔들에서 일하는 근로자만 14,000명을 웃도는 도시가 됐다. 방문객이 연간 2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마지막인 넷째 날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08:00), 호텔을 나와 강 건너 Arizona 주로 들어간다. Bullhead라는 강변의 농장지대를 지나, Oatman이란 곳에 버스가 멎는다(08:55). 조그만 타운인데 아주 퇴락한 모습들이다. 타운 전체가 하나의 큰 골동품 같은 느낌이다. ‘Historic Route 66’이란 표지가 거리에 붙어있다. “아! 인구에 회자되는 ‘Route 66’ 선이 지나는 곳이구나!”
캐년은 자연의 위대함을, 댐은 인간의 대단함을…

Olive Oatman Restaurant & Saloon.


버스가 이곳에 닿기 전에 캐빈씨가 미리 이곳의 특징과 일화를 설명했다. 1851년에 가족을 따라 서부로 향하던 백인 소녀가 토착민에 잡혀 노예가 됐다가, 어느 Mojave가족에게 ‘교환’되어져 딸로서 입양되고, 부족의 징표로 입 주위에 영구 문신이 새겨진다. 1856년에 풀려나 이곳에 정착했는 바,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녀의 성 ‘Oatman’이 이곳 지명이 된다. 그녀가 운영했다는 ‘Olive Oatman Restaurant & Saloon’이 아직 남아 영업을 하고 있고, 건물 전면에는 문신이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Oatman은 1915년 부터 약 10년간은 서부에서 가장 많은 금을 산출하며 번영을 누린다. 1950년 경에는 ‘Historic Route 66’의 경유지로 관광객이 몰리기도 한다. 캐빈씨가 재미있는 일화를 전한다. 당대 최고의 인기배우였던 Clark Gable(1901~1960)과 당시 Hollywood 최고 출연료의 배우 Carole Rombard(1908~1942)가 1939년에 Kingman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그 날로 Las Vegas로 Honeymoon을 떠난다. 그러나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다행히 밤 늦은 시각에 이곳 Oatman에 다다른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없어, 1902년에 지어진 작고 초라한 이곳 ‘Oatman Hotel’의 문을 열고 들어 선다. 말이 호텔이지 옛 한국의 싸구려 여인숙보다도 볼 품이 없다. 호텔은 물론 온 타운이 난리법석이 된다. 이 시각 쯤엔 Las Vegas에도 난리가 난다. 장안의 아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들 Honeymoon커플의 도착을 기다리던 호텔측은 물론 수많은 연예기자들이 영문을 몰라 웅성웅성 전전긍긍이다. 어쨌거나 당대 최고의 Hollywood스타 신혼부부가 작고 누추한 2층 룸에서 초야를 치룬다. 지금 이 호텔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는 “Gable-Rombard Honeymoon Suite”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아침에 일어난 이 신혼부부는 호텔의 바로 옆 건물인 작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팁으로 $5를 건넨다. 레스토랑은 이 돈을 식당안에 붙여 놓는다. 그 후로 이 식당에는 손님들이 벽에 돈을 붙이는 전통이 생기고, 지금도 식당 내부는 온통 입추의 여지없이 돈으로 도배를 한 그런 풍경이다.

40여분에 걸친 Oatman관광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LA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우리 내외는 종착지인 LA에 안전하게 도착(17:10)하여, 아들의 환대를 받는다. 결혼 40주년을 맞아 모처럼 시간을 낸 우리 내외의 짧은 미국서부관광은 이렇듯 편안한 가운데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만든 기회가 되었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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