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경제칼럼/수학과 영어, 그리고 싱가포르와 홍콩

2019-05-28 (화) 문주한 공인회계사
크게 작게
흥부는 원래 수학 선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영어를 가르친다. 수학 선생으로 10년, 지금은 영어 선생으로 20년.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은 영어 시간에 수학 문제까지 물어본다. 수학은 거의 다 까먹었는데도 말이다. 영어 따로, 수학 따로 물어보지 않고, 한 선생님에게 전부 물어보니까 더 좋단다. 그러니 흥부 입장에서는 영어 선생인데도 수학 공부까지 게을리 할 수 없다. 수학의 어떤 분야는 어쩌면 일반 수학 선생보다 더 깊게 공부하기도 한다.

지금 내 꼴이 그렇다. 한국에서 회계사를 10년 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다 까먹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한국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라이선스를 둘 다 유지하면서 매일 공부하고 있고, 한국에 물어 볼 회계사와 세무사들 친구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수학 책을 놓을 수 없는 영어 선생 흥부. 한국 세법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내가 바로 그 꼴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국 세금 얘길 하나만 하자. 한국도 해외 금융계좌신고 제도가 있다. 다만, 그 기준이나 계산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다. 예컨대, 미국은 1만 달러인데(FBAR), 한국은 약 50만 달러(5억 원)가 신고 기준이다. 한국에서 주의할 것은, 명의자와 실질적 소유자가 다를 때. 이 때에는 명의자와 실질적 소유자 둘 다 신고를 해야 한다. 부모가 딸 이름으로 자기 돈을 미국 은행에 넣어두었다면, 둘 다 신고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내 짐작이 맞는다면,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외국 은행에 넣어둔 돈이 총 100원이라면, 50원은 여기 미국에 와 있다고 보면 된다. 10원이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 여기서 질문 - 그렇다면, 나머지 40원이 가 있는 곳이 어딜까? 바로, 싱가포르와 홍콩이다.
그런데 금년부터 이 두 나라의 금융 정보가 한국으로 가기 시작한다. 다자간 금융정보 자동교환 협정(MCAA) 때문이다. 전에는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스위스 은행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옛날 얘기다. 홍콩도 마찬가지다. 외국인(비거주자)의 계좌개설 자체가 쉽지 않아졌다고들 한다. 묻을 때는 좋았는데, 파내기가 쉽지 않다.

그나저나, 이제 회계사는 세법이나 상법, 부동산, 노동법만 달랑 알아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름이 길고 내용은 더 복잡한 여러 다른 법까지 공부해야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머리는 매일 빠지고 기억력은 이렇게 하루가 다르니, 앞으로가 참 걱정이다. 오늘 점심엔 카레를, 저녁엔 연어를 해먹어야겠다. 그러면 좀 나으려나?

<문주한 공인회계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