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마초·엑스터시·GHB로 시작해 필로폰으로
▶ “뇌 쾌락회로 망가뜨려… 의지만으로 못 끊어”
대마초, 해시시, 엑스터시 등 ‘캐주얼 마약’부터 시작돼 자연스럽게 헤비급 마약인 필로폰으로 옮기는 마약 중독자가 늘고 있다.
재벌가 3세, 연예인, 정치인 가족 등의 마약 투약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다. 범죄집단이나 특정계층에서나 했던 것으로 여겨졌던 마약이 이제 평범한 회사원, 주부, 10대 학생까지 할 정도로 누구나 쉽게 접하고 있다.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처럼 마약이라는 말도 일상어가 됐다. “마약은 문화”라고 주장하는 이까지 나타날 정도다.
이 때문에 대마초, 액상 대마(해시시), 엑스터시 등 ‘캐주얼 마약’의 가격이 10년 새 열 배 이상 올랐다. ‘마약 청정국’ 지위도 벌써 잃었다. 마약류 사범이 10만명당 20명 미만이면 마약 청정국(유엔 기준)이지만 지난해 마약류 사범이 1만2,613명으로 10만명당 24명이었다. 단속되지 않은 마약 사범이 3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손성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지난해 10월 캐나다가 G7 국가 중 처음으로 성인의 기호용 대마를 합법화 했을 때부터 마약의 일상화가 어느 정도 예상됐다”고 했다.
◇대마초·엑스터시 등 ‘캐주얼 마약’부터 시작
‘캐주얼 마약’의 대표격은 대마초다. “대마초는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하고, 외국에서는 카페에서도 피우는데 우리나라는 왜 안 되나요?” 대마초에 대한 적지 않은 젊은이들의 인식이다.
대마는 독성이 마약을 한 본인보다 다음 세대에 더 많이 전해진다. 대마초는 담배와 달리 환각을 일으킨다. 남경애 경기도 마약퇴치운동본부 강사는 “대마 속 물질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은 환각ㆍ환청뿐만 아니라 주의ㆍ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정자의 운동 능력 약화와 감소 등을 일으킨다”며 “우울증이 심해지고 자살하기도 한다”고 했다.
‘MDMA’라고도 불리는 ‘엑스터시’도 캐주얼 마약이다. 1912년 히드라스티닌이라는 자궁 출혈 지혈제를 만드는 부산물로 발견됐다. 1980년대 환각 작용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필로폰과 LSD 대체재로 급부상했다.
엑스터시는 성적 욕망을 높이고 육체ㆍ감정적 감각을 민감하게 만든다. 밤을 새우는 댄스파티에서 피로를 느끼지 않고 즐기기 위해 많이 사용한다. 액스터시 한 알은 3~6시간 정도 환각 작용과 근육 긴장, 메스꺼움, 갈증, 식욕저하, 다리 떨림 등이 생긴다. 오래 먹으면 우울증 등을 유발하고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 술과 함께 먹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데이트 성폭행 약물(Date Rape Drug)’로 불리는 GHB는 물이나 술 등에 타서 마셔 ‘물 같은 히로뽕’이라는 뜻으로 ‘물뽕’으로 불린다. 승리의 클럽 ‘버닝썬’에서 사용됐다는 의혹 받는 약물이다. 무색무취로 소다수 등 음료에 몇 방울 타서 마시면 10~15분 이내 약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3~4시간 지속된다. 기분이 좋아지고 다소 취한 듯하면서도 몸이 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이어트·피로회복제로 속여 먹여
캐주얼 마약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헤비급 마약인 필로폰(메스암페타민)으로 옮기게 된다. 필로폰을 맞으면 잠이 오지 않고, 눈이 번쩍 떠지고 며칠 동안 피곤하지도 않다. 식욕도 없어지고 쾌감도 높아진다. 그래서 일부 범죄자는 처음에 필로폰을 마치 다이어트 약이나 피로회복제로 속여 복용하게 한 다음 서서히 중독시킨다.
필로폰 효과는 보통 30분 이내 시작돼 몇 시간 동안 지속된다. 다시 보충하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불안ㆍ우울ㆍ무기력해지고 폭력적이 된다. 필로폰 중독이 오래되면 기억력·의사결정·언어능력에 문제가 생긴다. 중독성이 강해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평균 87.8%)이 다른 범죄자보다 유난히 높다. 의지만으로는 거의 끊기 어렵다.
필로폰 부작용은 매우 크다. 혈관이 수축되면서 혈압이 올라간다. 환각이 생기고 조현병에 걸리기도 한다. 순식간에 늙어 몇 년 안에 조로증에 걸린 사람처럼 변한다. 필로폰을 화학적으로 합성할 때 남은 불순물 때문에 치아와 잇몸이 망가져 흉측하게 변한다(메스마우스(Methmouth) 부작용).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머리가 완전히 빠지기도 한다. 뇌혈관 파열, 심부전, 고열 등으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필로폰 등 마약 중독은 뇌의 쾌락회로에 장애를 영구히 남긴다”며 “의지ㆍ결심만으로 끊을 수 없고 체계적인 예방만이 최선”이라고 했다.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이 의심되면 스스로 체크할 수 있는 앱도 나와 있다. ‘중독 바로 알기 첵미힐미(Check me Heal me)’다. 이 앱은 마약중독자 재활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국립부곡병원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과제로 개발한 것이다.
이경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은 “마약 위험성을 알리는 전 국민 대상 예방교육을 강화해 중독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지 않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며 “체계적인 예방 교육으로 80%가 넘던 2년 이내 마약 사범 재범률이 20%대로 떨어졌다”고 강조했다.
<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