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총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가 승리한 배경을 놓고 구구한 해설이 나온다. 그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경제 붐, 안정적인 안보환경과 총리의 정치적 수완 등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의 승리 뒤에는 그보다 훨씬 큰 현상이 버티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쓴 대중 민족주의(populist nationalism)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는데 비해 중도좌파 정당들은 그에 대한 대응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다.
대중 민족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전형적인 방어논리는 대충 이렇다: 세계는 위험투성이다. 타국인들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으려들고, 우리의 안보기반을 허물며, 우리 영토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하지만 범세계주의를 표방하는 도시 엘리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세력들로부터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내부의 진보주의 세력에 맞서고, 국익을 수호할 터프 가이가 필요하다.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바로 이것이 네타냐후와 블라디미르 푸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나렌드라 모디, 빅토르 오르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렉시트 지지자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등이 내거는 공통된 주장이다.
영국의 철학자인 이사야 벌린은 1972년에 쓴 글에서 민족주의를 “세계의 여러 문화에 무엇인가를 추가하고자 하는 소외된 자들의 격양된 욕망의 표현”으로 정의했다.
그는 현대 민족주의의 뿌리를 이 세상에서 그들의 자리를 찾는데 집착했던 독일에서 찾았다. 그러나 일종의 피해의식인 변형된 민족주의의 정서는 부유한 강대국 사이에도 여지없이 발견된다.
냉전이후 러시아가 서구에 의해 부당하게 휘둘렸다는 푸틴의 주장과 아편전쟁 이후의 민족적 수모에 대한 중국인들의 집착, 전 세계가 반유대주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이스라엘 우파들의 불만, 멕시코인으로부터 중국인과 유럽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외국인들이 미국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는 트럼프의 판에 박힌 후렴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한결 같이 현재의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고 국가의 위상을 회복하겠노라 약속한다.
트럼프가 수용한 ‘민족주의’란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 골라하는) 국내 엘리트들과 믿을 수 없는 외국인들 모두에 대한 공격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0월 트럼프는 “미국에서 민족주의라는 단어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금기어로 여겨진다”며 “내가 누구냐고? 나는 민족주의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족주의자란 나쁜 말이 아니다”면서 “이제 그 단어를 마음 놓고 사용하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그가 사용한 용어가 무슨 뜻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트럼프는 “내가 사랑하는 미국은 세계무대에서 조연의 역할을 맡고 있다 ... 우리는 우리의 국부와, 모든 돈을 다른 국가들에게 헌납하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를 정당하게 대접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네타냐후도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지금보다 훨씬 나은 위치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1993년에 그가 펴낸 책의 제목에 해당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네타냐후는 공격적이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기운찬 이스라엘 민족주의를 주창했다.
이스라엘의 국력과 안보역량은 이전에 비해 측량하기 힘들 정도로 성장했지만 모든 아랍국들 가운데 전통적 적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가 우방이 되어주지 않았고, 그들의 경제가 빈곤수준으로 떨어지지도 않았기에, 세계 전체가 이스라엘을 적대시한다는 주장은 그럭저럭 유지되어왔다.
사실상 대중주의자들 대다수가 피해자 코스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세력을 떨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아마도 민족주의일 것이다. 요즘 미국의 국익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국내 정치인이 있는가?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진정한 논의는 민족주의의 개념이 제대로 인식되고 있는지, 이 역시 자유와 평등과 같은 다른 가치의 영향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들 두 가지 세트의 가치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경우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에서 밀턴 프리드먼에 이르는 열렬한 자본주의 신봉자들은 민족주의 진영이 추구하는 보호주의와 통제보다 진보진영이 주도하는 세계화와 경제적 자유를 지지했다.
자유주의자들이 지닌 위험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적 호소가 지니는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진보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일종의 비이성적인 애착으로 간주했다. 민족주의란 외부세계와의 연결이 확대되고, 사람들이 보다 이성적이 되어가면서 점차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집단감정으로 치부한 셈이다.
사실, 벌린도 나뭇가지를 한 방향으로 당겼다 놓으면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가듯 세계화가 깊숙이 진행되면서 민족주의는 후퇴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중 민족주의자들은 그들의 이념이 지니는 핵심적인 호소력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나는 최근 보우소나루 지지자에게 (자유시장지향적이고 개혁적인) 브라질 대통령의 경제정책, 혹은 문화적 민족주의가 그가 지닌 호소력의 요체인지 물었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는 이렇게 응답했다: 민족주의는 정당의 핵심이념이다; 경제는 그저 효율성과 성장에 관한 것일 뿐이다.
반면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민주당은 당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계속 좌편향된 경제정책을 밀고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 버몬트 출신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새로운 “전 국민 의료보장”(Medicare-for-all) 플랜을 공개하자마자 네 명의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공동으로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샌더스의 플랜은 2조-3조 달러의 연간 추가세수를 필요로 한다.
샌더스의 발표와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민주당 의원들은 ‘열린 국경’을 사랑한다고 꼬집고 자신은 국가를 보위하고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여 버니 샌더스 보다 트럼프가 우리 시대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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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