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장한 계곡, 험준에 산줄기에 터널까지… 경탄이 절로

2019-02-22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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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t. Lowe ( 5603’)

유장한 계곡, 험준에 산줄기에 터널까지… 경탄이 절로

Mueller Tunnel.

유장한 계곡, 험준에 산줄기에 터널까지… 경탄이 절로

Mt. Lowe 정상의 정경.


유장한 계곡, 험준에 산줄기에 터널까지… 경탄이 절로

LA 인근에 있는 산들에 얽힌 여러가지 기록을 살펴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 중에 하나는, 특정한 산들에 이름이 헌정된 사람들은 거개가 LA가 아닌 Pasadena에서 활동했던 분들이라는 점이다. Pasadena가 LA 인근의 산악지대인 San Gabriel 산맥에 보다 근접해있었기에 비롯된 일이라고 하겠으나, 1886년에 City of Pasadena가 설립될 시기에 LA는 아직은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니었기에 그곳까지는 전혀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여 더욱 그랬을 것이라 생각된다. 기록을 보면 1850년에 인구 1,610명으로 City of Los Angeles가 설립되었으며, 1880년에 11,183명, 1890년에 50,395명, 1900년에 102,000에 불과했었다. 그렇기에 1896년에 Griffith J. Griffith(1850~1919)대령이 오늘날의 Griffith Park을 LA 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상기증하고자 했을 때, 거리가 너무 멀므로 받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이 꽤 많았었던 것이리라.

LA시의 역내에서 최고봉으로 치는 Mt. Lukens (5074’)는 제4대와 제6대의 Pasadena 시장을 역임한 Theodore Parker Lukens(1848-1918)에게 헌정되었고, Mt. Throop(9138’)은 Caltech의 설립자로 Pasadena의 제3대 시장이었던 Amos G. Throop(1811-1894)에게 헌정되어졌으며, 오늘 소개하는 Mt. Lowe와 그 곁에 있는 Mt. Markham 역시 Pasadena 시민으로서 활동했던 인사들에게 헌정되어진 것들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등산동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Mt. Lowe를 오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I-210 을 타고 가다가, Pasadena 의 Lake Avenue Exit으로 나간 후, 북상하여 Loma Alta Drive와 만나는 Cobb Estate(1800’)에서 시작되는 Sam Merill Trail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Echo Mountain(3207’)을 거친 후, Inspiration Point(4500’)를 지나, Mt. Lowe(5603’)에 오르게 되는, 왕복 13마일에 순등반고도 3800’의 긴 여정이 되는데,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에 걸쳐 전국적인 또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총 이용객이 무려 300만명을 기록했었다는 Mt. Lowe Railway의 옛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잘 알려진 등산길이다.


그러나 오늘은 이와 정반대의 방향인 북쪽의 Eaton Saddle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루트를 소개키로 한다. 등산거리가 왕복 3마일에 순등반고도가 500’가 되어 훨씬 쉬운 산행이 되지만, 매우 가까운 주변에 포진한 가파른 산과 계곡들이 어우러진 험준한 지대를 관통하며 느끼는 경이감이 대단한 아주 매력적인 코스이다.

또 가고 오는 중간에 위치한 Mt. Markham (5742’)에도, 왕복 1마일에 순등반고도 300’ 내외의 미미한 추가부담으로 오를 수 있어, 어렵지 않게 1석2조의 효율적인 등산을 할 수 있는 코스이다.

가는 길

I-210 에서 La Canada의 2번 Hwy로 나와서 북쪽으로 약 13마일을 가면 Red Box 라고 부르는 휴게소를 겸한 주차장이 나온다. 도로변의 Mile-marker로는 38.32 가 되는 지점이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Wilson Road를 따라 2.3마일을 가면 오른쪽으로 길이 갈라져 나가는 3거리가 된다. Eaton Saddle이라고 부르는 해발고도 5100’인 곳이다. 길 오른쪽에 주차공간이 있고,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의 입구에 안내판과 차량통제 게이트가 있다. 이곳에 주차를 한다.

등산 코스

차량통제 게이트를 지나 남쪽으로 뻗어가는 소방도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넓은 길의 바로 왼쪽 길섶으로는 깊게 함몰된 Eaton Creek의 천길 벼랑이 아찔하고, 길의 바로 오른쪽은 바로 머리위로 아스라히 솟구쳐 있는 San Gabriel Peak의 깎아지른 듯한 천길 암벽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정면 가까이로는 거대한 피라밋이 허공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뾰쪽봉이 솟아있는데, Mt. Markham(5742’)이다.

출발점에서 약 0.3마일 정도를 걸으면 터널이 나온다. Mueller Tunnel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Eaton Saddle에서 Mt. Lowe를 갈 수 있도록 하기위해 1942년에 산림청에서 건립했다고 하는데, 미상불 이 터널을 통하지 않고는 이곳을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험악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상상컨대, 나르는 새도 지나가기가 어려웠다는 촉한의 관문으로, 출사표의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정벌키 위해 무려 아홉번이나 넘었었다는 천혜의 요새, ‘검문관’도 이런 지형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이곳은 단지 아주 짧은 길목에 지나지 않은 것이긴 하다.

100m 남짓한 길이의 깜깜한 터널을 지나서 조금 더 걸으면 이젠 비로소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4거리에 이르게 된다. Markham Saddle이며 출발점에서 약 0.5마일되는 지점이다. 오른쪽에는 San Gabriel Peak 과 Mt. Disappointment로 가는 등산로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고, 왼쪽은 Mt. Lowe Summit으로, 직진은 Mt. Lowe Campground 로 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왼쪽에 서 있다.

우리는 물론 왼쪽길로 나아간다. Mt. Markham의 서쪽 기슭을 따라가는 이 길은 오른쪽으로는 Bear Creek의 유장한 계곡과 이를 자양하는 원천인 Mt. Deception, Mt. Disappointment, San Gabriel Peak 등의 험준한 산줄기들이 한눈에 들어와, 어느 누구라도 부지불식간에 감탄성을 내고야 만다.

경이로운 경치에 취해 걷다보면 왼쪽의 Mt. Markham의 줄기가 끝나면서 Mt. Lowe의 줄기가 시작되는 Saddle에 이르게 된다. 총 1마일을 온 지점이다. 왼쪽으로는 Mt. Markham의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동쪽으로 이어져 나가고, Mt. Lowe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직진인데, 곧이어 약간 왼쪽으로 굽어진다.

대략 5분쯤 후에는 Mt. Lowe의 남쪽 아래에서 정상으로 이어져 올라오는 East Trail과 만나는 Junction에 이르게 되는데, 등산로 표지판도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바짝 꺾이는 길을 따라 간다. Mt. Markham, Occidental Peak, Mt. Wilson이 보태어진 많은 산들이 바라보이는 전망이 마냥 아름답다.

정상에 거의 이를 즈음에 Mt. Lowe의 남쪽 아래에서 서쪽 기슭을 타고 정상으로 이어져 올라오는 West Trail이 오른쪽에서 합류되어진다.

곧 정상에 이른다. 동서남북 사방의 전망이 막힌데 없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고, 아주 옛날에 설치됐을 듯한 렌즈없는 전망경들이 Mt. Baldy를 비롯한 주변의 산들을 잘 구분하여 볼 수 있도록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1892년에 바로 이 자리에 올라서있는 Thaddeus Lowe( 1832~1913 )교수와 그 일행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는 것도, 이 산과 저 아래의 Echo Mountain을 무대로 화려하게 전개되었던 역사를 돌이켜 보게 하는 사려깊은 배려라고 하겠다.

때를 125년 전으로 거슬러서, 1890년으로 가보자. 이곳 Pasadena에 David Macpherson이란 37세의 Cornell대 출신의 뛰어난 엔지니어가 있었는데, 그는 “구름까지 오르는 철도 (Railway to the Clouds)”를 건설하려는 꿈을 가지고, 세계최초의 전기산악관광기차(Electric Mountain Trolley)를 Mt. Wilson에 부설하려는 꿈의 설계도를 마련하여 그 사업의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이는 요즘으로 말하면 ‘Disneyland’ 같은, 아니면 그 이상의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Thaddeus Lowe라는 59세의 백만장자 발명가 교수가 있었다. 비행기라는 것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었던 그 시기에, 사람이 타는 기구(풍선)를 군사용으로 활용토록 제안하여 미국공군의 전신을 창설한 바 있는 그가 Macpherson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인허가 과정에서 설치장소는 Mt. Wilson이 아닌 Mt. Echo와 Mt. Lowe로 변경됐다. Almarian Decker라는 39세의 기차전문 엔지니어도 참여하여 이 프로젝트에 걸맞는 안전한 Trolley도 고안해 낸다.

이 세사람의 주도하에 1893년까지, 1차 구간으로, 산 아래의 Rubio Canyon에서 Mt. Echo의 정상까지를 직선으로 잇는 경철도가 부설됨과 더불어, Mt. Echo의 정상에는 객실 70개의 4층짜리 호화호텔과 작은 호텔, 또 관련 부속시설들이 속속 건립되어졌다. 마침내, Trolley를 포함한 모든 산위의 시설물들을 흰색으로 단장함으로써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게 한, “The White City”라고 불리게 되는 명소를 탄생시키고,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며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Mt. Echo에서 Mt. Lowe까지의 2차구간은 훨씬 거리가 길고 험준한 지형이어서 예상을 초과하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이 사업의 소유권이, 1899년에 오늘날의 City of Torrance라는 이름의 주인공인 Jared Torrance라는 부동산부호에게 넘어가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오늘날 San Marino에 있는 Huntington Library의 주인이었던 Henry Edward Huntington의 소유가 되어졌다고 한다. 원래 Lowe교수는 이 산악철도를 바로 이곳 Mt. Lowe 의 정상까지 부설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이 Mt. Lowe 의 남쪽 아래까지만 준공되어져 운행되었다고 한다.

1900년에는 화재로 4층호텔이 전소되었으나 복구되지 못했고, 이후에도 화재와 홍수가 세차례 더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Trolley는 운행되었는 바, 1922년엔 Henry Ford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하지만 1938년에 남가주에 있었던, 3일 동안의 집중호우에 따른 기록적인 대홍수는 거의 모든 것을 휩쓸어 감으로써, 45년간 300만명이 이용한 화려한 기록을 끝으로, 이 산악관광철도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곳에 ‘The White City’라고 불렀다는 ‘구름까지 오르는 철도’와 그 위락시설들은, 또 그것을 꿈꾸고 이 꿈을 실현해냈던 그 열정의 Lowe교수와 그 동료들은 다 어디로 갔으며, 또 원근을 가리지 않고 이 새로운 명소의 매력에 끌려 이곳에 올랐던 300만명이라는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인간사 모든 것이 다 한바탕의 꿈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래도 한차례 아름다운 꿈이 아니었나 싶다. 오늘 이곳 정상에, 햇볕은 따스하고 바람은 상쾌하다.

내려오는 길에 바로 이웃한 Mt. Markham에 오르려면 이곳에서 0.5마일을 그대로 되돌아 내려간 Mt. Markham과 Mt. Lowe사이의 Saddle Junction에서 Mt. Markham줄기의 능선을 따라 0.5마일을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약간 가파른 구간이 있으나 위험하진 않다. 정상은 길쭉한 직선을 이루는 특이한 형상으로 되어있는데, 역시 전망이 탁월하다. 특히 동쪽편 발아래로 펼쳐지는 Eaton Creek의 전경이 인상적이다.

이 산 이름의 주인공 Henry Harrison Markham(1840~1923)은 Pasadena에 살면서 우리 가주의 주지사를 역임한 분이라는데, 이웃 산의 주인공 Thaddeus Lowe교수가 관계당국에 적극 청원하여 이 산에 그 이름이 헌정되어졌다고 한다. 이런 배경으로 미루어보면, 생전에 이 두분의 교분이 두터웠던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겠는데, 바로 이웃한 산에 서로의 이름이 헌정되어졌으니, 이 두분의 인연은 실로 영세불망,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갈 것이겠다.

전망을 충분히 즐긴 후에는 올라온 길을 그대로 되짚어 주차장까지 돌아 나온다.

정진옥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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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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