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인 투자자들 미국 부동산에서 발 뺀다

2019-02-14 (목)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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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국 경기침체, 미중 무역 갈등이 원인

▶ 중국정부, 투자자들에 해외자산 처분 압박

월스트릿 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투자자들의 미국 상업용 부동산 매입 규모가 2012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중국 경제 침체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해외 중국인 투자자들에게 본국으로 투자 자금을 회수하라는 압박을 지속한 결과다. 부동산 시장 조사 기관 ‘리얼 캐피틀 애널리틱스’(Real Capital Analytics)에 따르면 중국 보험사, 대기업 등이 주축이 된 중국 투자자들에 의한 지난해 4분기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순매각 규모는 약 8억5,400만달러로 집계됐다. 중국 투자자들이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3분기 연속(지난해 4분기 기준) 순매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투자자들이 이처럼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매각으로 돌아선 것은 수년래 처음으로 현재 부동산 업계는 중국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 중이다.

■ 중국정부, 해외자산 처분 압박

중국인 투자자들은 약 5년 전부터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쏟아부으며 최상급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강한 매입세를 과시해왔다. 중국인 투자자에 대규모 거래는 뉴욕 소재 월도프 아스토리 호텔, 시카고 고층 빌딩 개발 프로젝트, 베벌리힐스 고급 주택 단지 개발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경쟁적으로 부동산을 사들였던 중국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매각세로 돌아선 것은 급반전이란 것이 부동산 업계의 반응이다. 중국인 투자자들은 지난해부터 그간 매입한 상업용 부동산을 처분하기 위해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고 미국 내 부동산 투자 지분 축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갑자기 매각세로 돌아선 것은 중국 내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다. 중국 중국 통화를 안정시키고 대기업 부채 규모를 줄여 국내 경제 안정화를 원하는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부 중국 개발업체들은 국내 자금 사정 악화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보유 부동산 처분을 유보 중이지만 자금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 결국 매각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미중간 무역 갈등으로 인해 중국인들에게 미국 부동산 투자가 덜 매력적으로 바뀐 점도 중국인 투자 감소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순매입 규모 급감

중국인들 전체 부동산 거래 규모는 3분기 연속 순매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약 263억 달러 순매입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순매입 규모는 6년래 가장 낮은 수준이며 중국계 투자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물류 기업 GLP가 주도한 약 116억달러 규모의 건물 매입이 없었다면 지난해 중국인들의 미국 부동산 투자 규모는 순 매각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의 부동산 매각 움직임은 주택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국 부동산 중개인 협회’(NAR)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4월과 2018년 3월 사이 중국인들의 주택 구입 규모는 전년도에 비해 약 4%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 내 주택 가격 상승, 달러 강세, 미중간 무역 갈등 등의 원인으로 중국인들이 미국 주택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미국 부동산 투자 감소는 중국 경제가 정체되고 있음을 반영한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중국 경제 성장률은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연간 약 6.6%로 중국 정부의 당초 예상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중국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기 전까지 중국 정부의 해외 투자 자본 규제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중국 투자자들에 의한 미국 부동산 매각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로젠 컨설팅 그룹의 아서 마건 파트너는 “현재까지 중국 정부가 이렇다 할 통화 안정책을 내놓지 못한 상태여서 해외 투자 자본 단속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중국 기관 소유 대형 매물 시장에 속속 나와

중국 투자자들이 미국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약 5년 전이다. 당시 중국 정부의 해외 투자 규제가 완화된 틈을 타 안정적인 투자 수익과 분산 투자를 목적으로 한 중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중국의 일부 대형 투자 기관은 천문학적인 금액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상징적인 건물을 기업 브랜드 이미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매입하며 상업용 부동산 가격 급등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안방 보험 그룹에 의한 매입이 대표적이다.

안방 보험 그룹은 지난 2015년 뉴욕 소재 기념비 적인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를 사상 최고가인 약 19억 5,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은 현재 일부 객실을 주거용을 전환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후 중국 정부의 감독 아래 있는 안방 보험 그룹의 전 대표가 부패 혐의로 구금된 뒤 안방 보험 그룹은 경영 악화 등으로 인해 미국 투자 호텔 포트폴리오를 매각하기 위해 시장에 내놓았다. 높은 부채 비율과 경영 악화에 시달리는 HNA 그룹과 대련 완다 그룹 역시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뉴욕시, 샌프란시스코, 미니애폴리스, 베벌리 힐스 등 대도시에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자산에 대한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다.

■ 수익 위주 보수적 투자로 선회

중국 대형 투자 기관들이 매각을 위해 시장에 내놓은 부동산 중 매입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나온 부동산도 포함됐다. 은행 업계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보유 기간 동안 중국 통화 가치가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낮은 가격에 매각해도 수익이 예상된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2014년 이후 약 12% 하락했다. 미국 부동산 투자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투자자들은 고층 빌딩이나 고급 호텔 대신 창고나 소형 상가 등 안정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여전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생명 보험 공사’(China Life Insurance)는 최근 조지아주 마리에타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지역에 약 6억 700만 달러 규모에 달하는 10여 개 쇼핑센터 포트폴리오 지분 중 약 80%를 매입했다. 상업용 부동산 업체 쿠시먼앤웨이크필드의 중국 투자담당 신이 맥키니 디렉터는 “3,000만 달러 미만 부동산 프로젝트에 대한 중국 투자 기관의 관심은 여전히 높다”라며 “무조건 비싼 건물에 투자하던 것과 달리 최근 중국 투자자들은 수익 위주 투자로 투자 방식을 전환했다”라고 설명했다.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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