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택시장, 자연재해 한방에 무너질 수 있다

2019-01-31 (목)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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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지역 보험료 증가로 주택 차압 급증 가능성

▶ 모기지 융자업체,“재해 철저히 대비해야”지적도

2008년 주택 시장 침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발생했다. 느슨한 융자 규제 관행이 공공연히 묵인되는 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서브프라임 사태가 곪아 터진 것이 원인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주택 시장은 조정기를 앞두고 있지만 침체에 대한 우려는 아직 크지 않다. 하지만 10년 전과 같이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침체 원인이 싹트고 있을 지도 모른다. 최근 전국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자연재해가 주택 시장 침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CNBC가 자연재해로 인한 주택 시장 침체 우려를 짚어봤다.

■ ‘자연재해’ 위험 요인 무방비 상태

기후 변화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주택시장 침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경고에 따르면 자연재해 피해를 입은 주택소유주들의 주택 보험료가 치솟으면서 보험료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소유주들을 대상으로 주택 차압이 증가할 수 있다.


주택 차압이 증가할 경우 모기지 대출 은행을 포함한 금융 업계 전반에 또다시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기지 대출 업계는 현재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 요인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라고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다.

모기지 기관 ‘파이브 스타 인스티튜트’(Five Star Institute)의 현 CEO로 국영 모기지 기관 프레디맥 전 최고 책임자 에드 델가도는 “현재 모기지 시장은 대출자들의 신용도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주택 시장 위협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자연재해 발생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모기지 시장 시스템은 지역별로 정상 작동 중이지만 자연재해 발생에 대한 대비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최근 수년간 지역 구분 없이

발생하는 대규모 자연재해를 통해서 볼 수 있듯 주요 주택 시장이 현재 자연재해로 인한 영향권에 포함되어 있다.

■ 허리케인 직후 휴스턴 모기지 연체 200% 급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모기지 대출 기관은 국영 모기지 기관 패니매, 프레디맥, ‘연방주택국’(FHA)의 관련 지침에 따라 피해 주택 소유주들을 구제하고 있다. 관련 지침으로는 일시적인 모기지 페이먼트 지불 유예, 상환 기간 연장 등의 구제책이 포함되어 있다.

피해 주택 소유주들은 지불 유예 기간 동안 보험을 통한 피해 보상을 청구하고 파손된 주택 수리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구제방안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피해 규모에 비해 보상액이 낮은 주택 소유주들 중 자발적인 차압을 선택을 가능성이 크다.

모기지 연체로 인한 차압이 늘어날 경우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금융 위기 촉발 우려가 높아진다. 델가도 CEO는 “모기지 대출 발급 시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차압 증가와 같은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2017년 8월 휴스턴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약 10만 채에 달하는 주택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허리케인 하비의 경우 연방정부가 자연재해 지역으로 선포할 정도로 피해 규모가 컸지만 약 80%에 해당하는 피해 주택은 홍수 다발 지역에 위치하지 않아 홍수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 코어로직에 따르면 당시 피해 주택의 모기지 연체율은 순식간에 약 200%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 경제 취약 지역은 주택 시장 침체로 직결

모기지 연체율 급등에도 휴스턴 주택 시장이 침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탄탄한 지역 경제와 투자자들의 수요가 높았기 때문이다. 허리케인 발생 직후 휴스턴 주택 시장에 밀려온 부동산 투자자들이 피해 주택 소유주들에게 현금 구입 등의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피해 주택을 대거 사들였고 다행히 차압과 집값 폭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 조사 기관 ‘애톰 데이타 솔루션’(Attom Data Solution)에 따르면 휴스턴 지역에서 허리케인이 발생한 다음 해에 주택 10채 이상씩 대량 구입한 투자성 구입이 약 50%나 급등한 것으로 조사됐다.

허리케인 피해 주택을 사들인 투자자들 중에는 ‘케르베로스 캐피탈 앤 홈베스터스 오브 아메리카’(Cerberus Capital&HomeVestors of America)와 같은 대형 투자 기관에서부터 소규모 개인 플리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개인 플리퍼들은 지난해까지도 경매를 통해 나오는 피해 주택 매물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피해 주택 약 80채를 매입한 JD 파텔 ‘마이어스’ 대표는 “차압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저평가된 피해 주택을 매입할 수 있어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기회”라고 말했다.

■ 자연재해 지역 업데이트 시급

휴스턴 주택 시장의 경우 탄탄한 지역 경제와 높은 수요 덕분에 자연재해로 인한 침체 위기를 비켜갈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 주택 대부분이 ‘연방재난국’(FEMA)이 지정하는 범람 지역에 위치하지 않아 홍수 보험 가입 의무에서 제외돼 자칫 대규모 차압 사태로 이어질 뻔했다는 지적도 있다.

주택시장이 취약한 다른 지역의 경우 자연재해 발생시 사정이 180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휴스턴의 사례를 본보기로 주택 시장 침체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모기지 대출 기관은 물론 국영 모기지 보증 기관마저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 대비를 FEMA의 자연재해 지도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FEMA의 자연재해 지도는 현재 업데이트가 시급한 상태로 최근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지역에 맞게 새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FEMA 자체적으로도 제기되고 있다.

■ 산불, 지진 잦은 가주도 예외 아니다

휴스턴 지역은 탄탄한 경제 여건이 아니었다면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자칫 대규모 차압 사태로 이어질 뻔했다.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주택 보험료 급등으로 인해 휴스턴 주택 시장에서는 현재 차압 주택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지역의 한 주택 경매 업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경매에 나온 차압 주택 매물 수가 지난 20년래 가장 많았다고 한다.

2016년과 2017년 연이어 홍수 피해를 입은 한 주택 소유주의 경우 연간 약 600달러였던 홍수 보험료가 이듬해 약 9,000달러로 인상될 예정이라는 통보를 최근 받았다.악몽 같은 홍수 피해를 연이어 두 번이나 입은 뒤 보험료마저 급등하자 주택 소유주는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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