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통곡을 그리워하며

2018-12-27 (목) 08:06:29 김은영 기후변화 전문가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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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행성을 관찰하는 한 현자는
일년에 하루 ‘세계 통곡의 날’을 제안하였다.
너무 아무렇지 않은 크리스마스
지붕의 산타 할아버지 풍선이 바다로 가고
징글벨과 ‘기쁘다 구주 오심’을 위하여 소나무들이 잘리고
포장재와 선물들이 하늘로 올라가
엄마 젖 빠는 아기의 몸속으로 들어가도
아무리 외쳐도 성장의 엔진을 멈출 수가 없다
하늘이 아무리 분노해도
무한 소비의 공장의 불을 끌 수가 없다
너무 아무렇지 않은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나무 꼭대기의 별은 여전히 빛나고
사람들은 여전히 기쁘게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통곡의 날로 정하자
하루만이라도 공장은 컨베이어벨트를 멈추고
하루만이라도 세상은 불을 끄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하루만이라도
사라진 새들, 박각시, 주락시들 *
멸종되는 사자, 곰, 코끼리, 호랑이
죽어가는 벌, 나비, 벌레들의 신음소리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의 불안한 숨소리를 들어 보자
그리고 무릎 꿇고
통곡하자
축복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하느님께 물어보자

*박각시 주락시: 주로 박꽃의 꿀을 빠는 나방으로 시인 백석의 시
‘박각시 오는 저녁’에서 묘사되었음

<김은영 기후변화 전문가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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