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모두가 설레는 크리스마스다. 그런데 분위기는 옛날 같지 않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캐럴은 저작권 때문에 조용해졌고, 나 하나도 힘드니 이웃까지 챙기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성탄절의 중심에 있어야 할 교회는 스스로 염려의 대상이 되었고, 그래서 2000년 전의 메시지가 아직도 유효한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2018년의 성탄절을 맞는다.
마태복음(마태오 복음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어느 주인이 세 명의 종들을 불러, 각각 5억, 2억, 그리고 1억씩 구별하여 돈을 맡겼다. 각각 오씨, 이씨, 그리고 한씨라고 가정하자. 한참 만에 돌아온 주인이 종들을 다시 불러 결산을 해보니, 오씨와 이씨는 열심히 장사를 해서 재산을 2배로 불렸다. 주인은 그들을 칭찬했다.
그러나 1억을 받았던 한씨는 그 돈을 모두 땅에 파묻고, 주인이 오자 그대로 내 놓았다. 한씨가 한 일이라고는 남들이 모두 잠든 어느 날 밤, 자기 뒷마당에서 삽질한 것, 그 하나가 전부다.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내 돈을 두 배로 불려준 오씨와 이씨는 ‘착한’ 청지기다. 그러나 수익률 제로의 한씨는 철저하게 게으른 종이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관련 구절은 그래서 한씨가 돈을 모두 빼앗기고 집에서 쫓겨나는 무서운 심판으로 끝난다.
마태복음의 집필자는 2000년 뒤의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을까? 결산의 순간이 왔을 때, 내 놓을 것이 없는 자가 되지 말자는 것. 그리고 주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그 주인과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다는 것. 글쎄,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교회당에도 안 나가는 사람이 그 뜻을 전부 헤아릴 재간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지, 그래서 부가가치를 창출한 삶이었는지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8년의 마지막 한 주를 앞두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고요할수록 밝아진다. 손을 모아, 특별히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오 씨나 이 씨처럼 열심히 산 것은 천부당만부당. 한씨 만큼의 1 달란트조차 받을 자격도 내겐 없었다. 그렇게 과분하니,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충실히 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행복할 자격이 있어도 되는 것인지 매일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존재는 없는 법. 오늘도 나는 내 미션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하다. 이제 밝아질수록 고요하다. 그런 점에서 2000년 전의 메시지는 오늘도 늘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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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한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