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Baldy to Iron,8년 전 좌절을 맛봤던 14시간 코스, 이번엔 과연…

2018-1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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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 Antonio Ridge Traverse ( Baldy to Iron ) <상>

▶ D데이 며칠 전부터는, 두렵고 설레는 마음에, 불면의 밤을 보낸다

Baldy to Iron,8년 전 좌절을 맛봤던 14시간 코스, 이번엔 과연…

West Baldy에서 내려다 보이는 Iron Mountain.

Baldy to Iron,8년 전 좌절을 맛봤던 14시간 코스, 이번엔 과연…

동쪽에서 바라 본 Gunsight Notch.


월요일(2018-11-5) 오전에 열혈 등산후배 Jason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번 일요일에 어느 산을 가냔다. 마침, 매번 등산을 같이 하는 Peter와 Ignacia가 이번 주말에는 Nevada주에 있는 어느 Desert Peak으로 원정등산을 할 것이라서, 나는 아직 어디를 갈지 정하지 않았다고 답한다. 이에 Jason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그러면 이번 일요일에 “San Antonio Ridge Traverse” 산행을 하면 어떻겠냐 묻는다. “Iron to Baldy” 산행이라! 난 이 코스의 산행에 관한한 일종의 Trauma가 있기 때문인지, 이 말을 듣는 순간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니까 오래전인 2010년 6월의 일이다. 누군가로 부터 ‘Iron to Baldy’ 구간의 산행이 만만치 않다는 말을 듣게 된 후, 이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 났었다. 그리하여 이 코스의 산행경험이 있는 사람을 리더로 모시고 이 코스의 산행을 해야 겠다는 의욕이 간절하여 등산 선배들을 대상으로 이 코스의 산행 경험이 있는 분을 수소문 한다. 급기야 두 분을 알게 되는데, 이 분들과 면식은 있으나 그다지 친밀한 관계는 아니어서 선뜻 그런 어려운 부탁을 드리기가 망서려 진다. 그래도 산행을 하고픈 욕망이 강하였기에, 가외의 용기를 내기로 한다. 마침내 산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후배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말미암아 많은 산악인들로 부터 두루 존경을 받고 있는 L선배께 도움을 요청한다. 고맙게도 흔쾌히 수락해 주신다. 오래 전에 한 차례 이 코스의 산행을 하셨었는데 14시간이 걸리는 힘든 산행이었단다.

D-day를 일요일인 6월13일로 잡고 내 주변의 등산동료들을 대상으로 희망자 5명을 모집한다. 총 7인(남4, 여3)으로 팀이 구성된다. L선배는 ‘Iron to Baldy’의 산행을 하셨었지만, 팀원 가운데 3인이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산행의 강도가 다소 낮을 ‘Baldy to Iron’ 으로 산행방향을 정한다. 산행의 결과는? 실패였다.


Gunsight Notch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앞에 이르러, 그 험준함에 겁을 먹고 또 마땅히 오를 만한 루트도 찾지 못하여 결국 Iron까지 1마일이 남은 지점에서 산행을 포기한다. 그러니 이젠 다시 Baldy로 되돌아 가야 할 입장이다. 그러나 특히 여성멤버들이 Baldy쪽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맨땅에 주저 앉는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이른바, ‘진퇴양난’의 경지이다. 옥신각신 설왕설래 끝에 L선배가 제안한다. 남쪽으로 뻗어내리는 작은 산줄기와 Coldwater Canyon을 따라 East Fork Road를 향하여 내려가자는 것이다. 일단은 아래로 내려가자는 코스라서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 때가 아마도 오후 3시 경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목표로 했던 곳인 East Fork Road상에 있는 Cattle Canyon Bridge에 다다른 시각은, 하산을 시작한 때로 부터 무려 10시간이 지난, 새벽 1시 경이었다. East Fork 주차장에 세워 둔 차를 타고 다시 Baldy의 Manker Flats주차장까지 가서 그 곳에 세워 두었던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 시각은 대략 새벽 5시 경이었다고 기억된다. 팀원 중 2명이 팔과 다리에 심하진 않지만 그래도 꽤 출혈이 있는 부상을 당했고, 신발을 신은 채로 흐르는 개울물을 건너야 했던 횟수가 대략 40회에 달했다. 실로 불안하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암흑속의 거친 하산길이었다.

자, 그런데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66세가 된 나보다 19년이나 젊은 Jason이 이 산행을 제안한다. 어쩔 것인가! 산행에 나선다면 일행으로는 Jason, Sunny, Susan, 일우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을 우선 꼽을 수 있겠는데, 이들 모두가 이 코스를 통과한 경험이 없다. 더구나 Susan과 나는 8년 전에 실패했던 이 산행의 동료였다. 나의 경우는 Gunsight Notch의 두려움을 경험하고 일종의 패배의식이랄까 이 코스에 관한한 기가 크게 꺾여 있는 상황이다.

고민스럽다. 삼키자니 쓰고, 뱉자니 아깝다. 그러나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이 코스의 산행을 해 내고픈 욕구가 일어난다. Jason과 Sunny는 281개에 이르는 Sierra Club의 HPS Peak Bagging을 다 마치고 그 동안 40여개의 SPS 산들을 열심히 다녔다. 또 WTC과정을 이수하면서 기량이 크게 향상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믿을 만 하다. 또 내 나이를 감안하면 지금이 아니면 이젠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다.

No venture, No gain!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랬다. 이런 저런 사념으로 망서린 끝에 마침내, ‘그래, 해보자!’ 고 동의한다. 한가지 다짐은, 누구 하나라도 중간에 못 가겠다고 하면 이의없이 산행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Jason이 농담반 진담반의 어조로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이 중간에 돌아서는 일입니다”며 즐겁게 동의한다.

수락을 하고 나서 일우와 Susan에게 산행계획을 알리고 참여 여부를 묻는다. 일우는 다른 계획이 있는데다가 바로 지난 주 일요일에 있었던 26마일의 Monte Arido산행으로 무릎이 약간 거북스런 느낌이라 힘든 산행을 자제해야 할 입장이란다. Susan은 기꺼이 동행하겠단다. 결국 네 사람이 팀이 된다. 시에라클럽 멤버인 Y는 산행을 앞둔 전날에는 걱정이 되어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제 내가 미답의 그 어수선한 경지를 체험한다. 특히 목요일과 바로 전날인 토요일 밤에는 더욱 잠이 오지 않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샌다.

당초 우리가 염두에 둔 산행경로는 ‘Iron to Baldy’이다. LA Korea Town의 우리 집 앞에서 새벽 02:30에 모여 Heaton Flats로 가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산행을 마치는 Manker Flats에는 누군가에게 미리 교통편의를 부탁해 두자는 복안이다. 그런데 이 계획을 Ignacia의 권유에 따라 ‘Baldy to Iron’으로 변경한다. Iron을 오르느라 힘을 많이 소진한 상황에서 위태로운 Notch들을 지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 또 Antonio Ridge의 동쪽에 도달하여 West Baldy를 향해 가파르게 2000’의 고도를 오르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관점이다. 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견해라서 기꺼이 이를 수용한다. 이 Ignacia의 권면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 까딱했으면 산행을 마치지 못하고 아주 난감한 곤경에 빠졌을 수도 있었다.

D-1인 11월 10일 토요일 저녁이다. 물과 게토레이 6리터, 빵 3개, 떡 1덩이를 배낭에 담는다. 헤드램프, GPS, 카메라의 배터리를 확인하고 예비용도 챙겨 넣는다. 잠을 좀 자 두려고 저녁을 굶고 저녁 7시 경에 자리에 눕는다. 여러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자정 쯤에야 설핏 잠에 든다. 그러나 새벽 1시에 맞춰 놓은 자명종 소리에 금새 일어난다. 그래도 다행히 잠시는 눈을 붙인 셈이다.


드디어 결전의 날인 2018년 11월 11일을 맞은 것이다. 에너지 보충을 위해 계란 2개를 넣고 라면을 끓인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 02:30, 우리 집 앞에 3인이 다 모인다. 우리 일행 네 사람 모두가 Sunny의 차를 타고 깜깜한 어둠을 달려 Manker Flats 주차장에 도착한다. 우리 외에는 차량이 없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 금새 몸이 떨려 온다. 날씨가 차서 물이 많이 필요치 않을 듯 하여 1.5리터를 덜어 낸다. 25파운드 가량될 중량의 배낭을 둘러 메니, 어깨에 걸리는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데, 유난히도 양 어깨쭉지에 큰 통증이 느껴진다.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JMT종주처럼 35파운드가 넘는 중량의 배낭을 메었을 경우에도 이러한 통증을 겪은 일은 없었다.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행장을 챙겨 트레일 안내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시각이 03:50이다. 여태까지 Baldy를 70여 차례 올랐지만, 오늘처럼 이른 시각에, 오늘처럼 비장한 심정으로, 오늘처럼 무겁게 짓누르는 배낭으로 올라 본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기운도 없지만 어깨가 너무 아프다. 나이 탓일까? 숙면을 못한 때문일까? 지난 주에 26마일 산행에서 하산시 7마일 거리를 배낭 하나를 더 메었던 일 때문인가? 일행에 양해를 구하고 가파른 산 비탈에 올라 앉아 볼일도 본다. 오늘 산행을 감당할 기력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고개를 든다. 나로 하여 산행이 지체되는 상황이라, 다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낮 시간을 아끼려, 새벽에 집을 나온 일행에게 민망한 마음이다. 거북이 걸음으로 Sierra Club의 Ski Hut(05:45; 2.2마일; 8220’)을 경유, Mt. Baldy정상에 오른다(07:59; 4.1마일; 10064’).

오늘처럼 힘들게 또 느리게 Baldy에 오른 일이 과연 있었나 싶다. 어쨌거나 오늘은 나의 Baldy산행 이력에서 가장 느린 걸음이었겠으나 그래도 가장 이른 시각에 정상에 오른 날이 된다. 또 오늘 하루로 보자면 가장 먼저 정상을 밟은 선착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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