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과 비움

2018-10-23 (화) 08:26:56 유설자 수필가 애난데일/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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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세포마다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참으로 계절의 흐름이 신비롭다. 마치 세상의 주인이 자기들인 양 오만하게 휘둘러 온 인간들의 온갖 횡포로 인해 ‘이상기온’ 이니 뭐니 해도, 계절은 의연하게 제 갈 길을 간다. 봄 지나 여름, 그리고 여름 지나 가을….. 창조주의 ‘거룩한 뚝심’이라고 할까. 또 가을은 뭔가를 생각하게 하지만 욕망을 갖게도 하는 계절이 아닌가.

나무는 그 종류에 따라 열매를 맺고 인간은 그 성격의 결과를 거둔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모두가 한번 주어진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더 나아가 진지하게 삶을 모색하며 끊임없이 사색하는 아름다움을 이 가을에 가져보는 것이 앞으로 더 낳은 삶의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옛 속담에 “봄 일은 며느리 시키고 가을 일은 딸 시킨다” 라는 말도 있듯이 가을 햇살은 봄 햇살보다 훨씬 부드럽다. 높고 푸른 하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뜬구름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매년 맞이하는 가을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요즈음에는 가을이 사뭇 새롭게 다가온다. 예전에 느끼진 못헸던 세세한 변화들이 삶을 지배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젊었을 때에 가졌던 꿈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의 변함을 알게 되었고 인간의 행복과 아름다움이란 사실이 아니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가을은 넉넉하고 풍성하지만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기 위해 서서히 떠나 보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겨울을 보내며 봄을 맞이하고 어느덧 여름을 밀어내고 다시 돌아온 가을. 우리도 깊어가는 이 가을 만큼은 자신을 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흔해 빠진 애기지만 ,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는 데 이제 곧 또 한 해가 기울어 갈텐데 , ‘너는 도대체 무얼 뿌렸는가’ ‘어떤 결실을 기대하고 있는가?’ ‘잘 영글어가고 있는가?’ 아뿔싸! 그 문제가 있다. 마냥 가을을 좋아할 일이 아니다. 가을은 근엄한 표정으로 나에게도 한 해의 결산서를 요구하는 것이다. ‘열매 맺는 삶을 살았는지?’ 막상 돌아보니, 열심히 살아오긴 한 것 같은데, 최선을 다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겸손히 섬기는 일에도 최선을? 열린 마음으로 나누는 일에도? 기도생활에도, 칭찬 하는 일에도, 배려하는 일에도, 인내하는 일에도…. 숙연해지는 가을 앞에서.....

<유설자 수필가 애난데일/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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