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택시장서 셀러들의 잔치 끝나가나

2018-08-30 (목)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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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보러오는 발길 뜸해지고 바이어 문의도 급감, 셀러들 난감

▶ 주택가격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라, 모기지 금리도 상승

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주택시장에서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나온 매물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지만 매물이 쌓여가는 지역이 서서히 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이어들의 웃돈 경쟁을 뒷짐지며 즐기던 셀러가 이제는 먼저 가격을 내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CNBC가 바이어스 마켓으로의 전환 신호가 나타나고 있는 주택 시장을 진단했다.

■ 오픈하우스만 북적

LA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 한인 에이전트는 갑작스럽게 바뀐 주택 시장의 반응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얼마 전 한 고급 주택가에 거주하고 있는 셀러로부터 집을 팔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집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리스팅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한인 에이전트가 리스팅을 받은 지역은 최근 몇 년간 중국인들과 중동계 이민자들의 주택 구입이 많았던 LA 카운티 동부의 클레어몬트 시. 여름 방학 기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 나오는 매물은 하나둘씩 팔린 기록이 있는 지역이다.

에이전트가 리스팅 준비 작업을 할 때만 해도 인근에 나온 매물은 장기간 팔리지 않고 있는 매물은 한 채에 불과했다. 그러더니 비슷한 조건을 갖춘 매물이 한인 에이전트의 매물보다 한발 먼저 시장에 나왔다. 더군다나 먼저 나온 매물의 가격은 에이전트가 내놓기로 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이었다.

드디어 리스팅 준비 작업이 완료되고 매물을 시장에 내놓기로 계획한 날이 됐는데 전날 밤 길 건너편의 집까지 매물로 나온 사실을 알게 됐다. 장기간 팔리지 않던 매물까지 포함, 이 동네에 불과 일주일 사이 매물이 다섯 채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래도 에이전트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중국인과 중동계 구입자들로부터 구입 문의가 많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에이전트는 차가운 시장의 반응에 결국 놀라고 말았다. 처음 개최한 오픈 하우스 행사는 그럭저럭 성공적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양일간 약 20여 그룹의 방문자들이 오픈 하우스를 연이어 찾았다. 그러나 월요일로 접어들면서 분위기는 180도 반전됐다.

오픈 하우스의 열기가 주 중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됐지만 월요일부터는 집을 보러 오겠다는 전화 한통 걸려오지 않았다.

오픈 하우스 방문자 중에는 궁금해서 방문하는 이웃과 재미 삼아 집 구경을 하기 위한 발길이 많다. 본격적인 거래로 이어지려면 에이전트를 대동한 바이어의 방문이 많아야 하지만 집을 내놓은 지 3주째가 되도록 바이어 측 에이전트로부터의 문의 연락은 불과 한 건밖에 없었다.


■ 콧대 낮아진 셀러

집을 보러 오는 발길이 뜸하고 바이어들의 문의 연락조차 끊기면서 셀러들이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다. 좀처럼 꺾일 것 같지 않던 셀러들의 콧대가 점차 낮아져 결국 스스로 가격 인하에 나서는 셀러들이 늘고 있다고 CNBC가 보도했다.

CNBC가 온라인 부동산 업체 질로우의 보고서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지난 6월 시장에 나온 전체 주택 매물 중 약 14%에 해당하는 매물의 가격이 인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내놓은 집이 안 팔리자 가격을 깎아서라도 빨리 팔겠다는 셀러의 조급한 마음이 반영된 현상이다. 매물 가격이 떨어지면 결국 매매 가격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CNBC에 따르면 최근 전국 35개 대도시 지역 중 절반이 넘는 지역에서 주택 가격 상승 폭이 둔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리스팅 가격 인하 현상은 그동안 주택 가격 상승 폭이 높았던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샌디에고의 경우 지난 6월 매물 5채 중 1채 꼴로 리스팅 가격이 인하됐다. 지난해 6월 리스팅 가격 인하 비율인 12%와 비교할 때 가파른 상승세라고 할 수 있다. 주택 시장 최대 과열 도시 중 한 곳인 시애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6월 시애틀 지역에 나온 매물 중 약 12%가 가격을 낮췄는데 지난 4년래 가장 높은 비율이다.

밀레니엄 세대 등 젊은 층 인구 대거 유입으로 주택 시장이 활황을 이뤘던 텍사스 주 오스틴 역시 가격을 내리는 매물 비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오스틴 라일리 리얼터스의 비 바넷 중개인은 “지난 몇 년간 나타난 치열한 주택 구입 경쟁 열기가 점차 가라앉고 있다”라며 “최근 신규 주택을 중심으로 매물 공급이 증가하면서 바이어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라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CNBC에 따르면 샌호제, 인디애나 폴리스, 샬럿 등에서도 내년 중 주택 가격 둔화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질로우에 의해 전망됐다.

■ ‘가격 인상’, 제 발등 찍는 격

셀러들에 의한 매물 가격 인하가 늘고 주택 가격 상승폭까지 둔화되고 있는 것은 집값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에 올해부터 모기지 이자율까지 오르면서 바이어들의 주택 구입 능력은 현재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5~6년간 주택 가격을 자유자재로 올리면서 주택 시장을 쥐락펴락 해온 셀러들의 능력도 결국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주택 시장 침체 이후 한 동한 지지부진했던 주택 가격은 지난 수년간 급등하며 바이어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주택 가격 급등은 매물 수급 불균형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밀레니엄 세대의 연령이 주택 구입 연령대로 대거 진입한 반면 주택 시장 침체 이후 신규 주택 공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주택 시장에는 심각한 매물 수급 불균형 현상이 몇 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주택 시장 침체 뒤 은행에 압류된 수백만 채의 주택은 대부분 임대 주택으로 전환되면서 주택 시장에서 주택 매물의 씨를 말리는 계기를 제공했다.

애런 테라자스 질로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년간 셀러스 마켓으로의 전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라며 “그러나 최근 리스팅 가격 인하 등 바이어스 마켓으로 이동되는 초기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라고 CNBC와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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