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도 9,800’의 시냇가에서 하룻밤 캠핑은 어떨런지

2018-07-20 (금) 정진옥
크게 작게
고도 9,800’의 시냇가에서 하룻밤 캠핑은 어떨런지

정상의 풍정.

고도 9,800’의 시냇가에서 하룻밤 캠핑은 어떨런지

등산길 어느 구간의 정경.


고도 9,800’의 시냇가에서 하룻밤 캠핑은 어떨런지

등산로변의 Lodgepole 소나무 숲.


1800년대에 Mt. San Jacinto를 찾았던 백인들은 이 산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대해 언급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일은 없지만 탐험자나 여행자들이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났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고 생각된다. 원래 이 지역에 대대로 살아왔던 Cahuilla 종족들은 Mt. San Jacinto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 ‘Tauquitch’의 영혼이 살고 있어 그에게 희생되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이거나, 아니면 신이 그 악마를 겁먹게 하려고 내는 소리라고 하여 접근을 아주 꺼렸었다고 한다.

이 ‘이상한 소리’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으로는, 이 Mt. San Jacinto와 바로 마주하고 있는 Mt. San Gorgonio 사이의 Banning Pass가, 서로 다른 지각이 맞물리는 San Andrea Fault이기 때문에 이 접합부위에서의 지층내부가 서로 부딪치면서 깨어지거나 허물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소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재미삼아 Mt. San Jacinto의 어느 동굴에 산다는 악마 ‘Tauquitch’의 전설을 소개한다. 옛날 옛날에 San Jacinto 산에는 자유자재로 둔갑을 하여 손쉽게 사람들을 자기의 동굴로 유인한 후 이들을 잡아먹는 악마 ‘Tauquitch’가 살고 있었다. 산 아래 마을에는 Algoot라는 대단히 뛰어난 ‘역발산기개세’의 용사가 있었는데, 그는 아주 준수하고 용감한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어느날 그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San Jacinto 산으로 모험을 떠났다가 Tauquitch 에게 잡아 먹히게 된다. 아들의 친구들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Algoot는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신체를 단련하고 무공을 쌓는데 전력투구한다.


마침내 때가 무르익었을 때, 마을 주민들과 함께 Tauquitch의 동굴로 올라가 괴물과 대결하게 된다. 먼저 마을사람들이 동굴을 향하여 무수한 돌을 던져 악마를 공격한다. 마침내 수세에 몰린 악마가 거대한 뱀인 본래의 모습을 나타낸 채 바다로 도망치려고 하는 찰나에, 괴력의 용사 Algoot 가 뱀의 꼬리를 얼른 감아쥐고 머리위로 빙빙 돌리다가 맨땅에 패대기를 침으로써 이를 죽인다. 마을사람들이 환호하며 이 뱀을 불에 태우게 되는데, 이때 악마의 몸은 불타서 완전히 소멸되었으나 영혼은 빠져나가서 다시 동굴로 숨어든다. 그리하여 이 뒤로도 악마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의 영혼을 잡아가는데, 때로는 멋장이 백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단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이 이 악마 ‘Tauquitch’를 영원히 소멸시켜 줄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Mt. San Jacinto의 남쪽에 있는 Tahquitz Peak은, 철자가 좀 다르지만, 바로 이 악마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오늘 안내하는 Deer Springs Trail은 순등반고도 5,200’에 왕복 19마일의 코스로, 순등반고도가 10,700’에 왕복 22마일에 이르는 C2C루트에 이어, Mt. San Jacinto를 오르는 루트 중 두번째로 길고 힘든 등산코스인데, 마일당으로는 평균 550’의 오름길이라 대체로 평탄한 느낌이 들고, 위험한 구간이 없는 대단히 아름다운 코스이다. 왕복산행에 보통 10시간 내외가 소요되는데, 어느 정도의 등산경험이 있는 분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가는 길

LA 한인타운에서 10번 Freeway East를 타고가다 Downtown 부근에서 60번 East로 진입하여 약 76마일을 달리면 다시 10번 Freeway East에 합쳐지는데, 이 지점에서부터 5.8마일을 더 가면 ‘8th St / CA- 243’ 출구가 나온다. 여기서 내린다. 8th St에서 우회전하여 0.1마일을 가고, Lincoln St에서 좌회전하여 0.5마일을 가면, CA-243 / San Gorgonio Ave 가 된다. 다시 우회전하여 243번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약 23마일을 가면 길 왼쪽으로 주차공간이 있고 Deer Springs Trailhead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등산허가를 받기위하여 이곳을 지나쳐, Idyllwild 의 초입에 있는 Ranger Station까지 가야 하는데, 이곳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San Jacinto Ranger District, 54270 Pinecrest, Idyllwild, CA 92549


Phone: 909-382-2921, Fax: 951-659-2107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등산허가를 받고나서, 다시 조금 전에 지나쳤던 Deer Springs Trailhead로 돌아가서 그 곳에 주차한다. 등산허가는 미리미리 우편이나 Fax로 신청하여 받을 수도 있다.

등산코스

주차한 곳의 뒷쪽 언덕에 올라서면 바로 왼쪽으로 나아가는 널찍한 등산로가 되는데, 고도가 이미 5,639’에 이르는 고지대이기 때문에 공기가 청량하고 소나무와 Manzanita가 뒤섞인 숲이 마냥 푸르다.

대략 2분정도를 걸어가면 왼쪽에 Deer Springs Trail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고, 10분여를 걸으면 Wilderness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즉 여기서부터는 입산허가가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자연보호구역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구간을 지나면서는 특히 두가지 사실이 눈에 띈다. 하늘 높이 곧게 자라있는 Jeffrey Pine들의 사이사이로, 빨간 줄기가 두드러진 특징인 Manzanita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는 것과, 길목의 구비구비마다 커다란 바위들이, 어느 예술가가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듯 한 조형미를 선보이며, 군데군데 포개져 있거나 따로따로 놓여있는 채, 주변의 수목들과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숲길을 1시간 정도를 걸어 2.3마일 지점에 이르면 등산로가 왼쪽으로 꺾이면서 오른쪽에 Suicide Rock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다. 토착 원주민의 추장 따님과 그녀를 사랑한 청년이 부모들의 반대에 좌절하여 이곳에서 함께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으로 1마일 거리에 있는 해발고도 7528’의 거대한 암봉이다. 그들의 비련을 아파하면서 갈 길이 먼 우리는 계속 직진이다.

다시 또 하나의 갈림길에 이른다. 4.1마일을 온 Strawberry Junction으로 동쪽에서 이어져 오는 PCT가 이곳에서 합류되는 것이다. 소나무와 바위들이 더욱 아름답다. 우리는 계속 직진이다. 오른쪽에 있는 Marion Mountain의 서남쪽 기슭을 통과하는 구간이다. 등산로 왼쪽으로 신기하리만큼 영락없는 돼지저금통인 집채만한 바위도 지난다.

어느덧 등산로 왼쪽에 작은 팻말이 있는 Marion Mountain Trail Junction에 닿는다. 6.4마일을 온 셈이다. 오른쪽 길을 택한다. 이곳에서 불과 30m를 가면 상세한 이정표가 서 있는데, 3.8마일 아래에서 올라오는 Seven Pines Trail이 왼쪽에서 합류되어지는 Junction이다. 이제 정상까지 3.2마일을 남겨놓은 지점이다.

여기서 부터는 길이 북동쪽으로 나아간다. 곧 노랗게 물든 고사리들이 길섶의 바위들을 둘러싸고 있는 지점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Deer Springs Camp이다.

이내 다시 왼쪽으로 갈림길이 나온다. 6.9마일 지점으로 Deer Springs Trail과 손을 잡고 2.8마일을 동행해온 PCT는 이곳에서 왼쪽의 Fuller Ridge Trail을 따라 나간다.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은 이제 거의 Lodgepole Pine들 일색이다. 중심줄기가 단아하고 전체적인 자태가 기품이 있다.

키가 낮은 Chinquapin과 Buckthorn이 빽빽하게 들어찬 비탈을 횡단한다. 이 사슴샘 코스에서의 가장 큰 물줄기인 Creek을 지난다. 흘러넘치는 물로 등산로가 질척인다. Shirley Peak과 Newton Drury Peak 사이의 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로 무성한 Corn Lily의 초원도 보여준다.

약간 가파르게 올라가는 구간을 지나면 이내 다시 평평해지면서 고도 9,800’의 Little Round Valley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8.2마일을 온 지점이다. 요즘은 건기라서 흐르는 물이 없으나 보통은 맑은 시냇물이 흘러 매우 목가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좌우로 많은 캠프 터가 마련되어 있다.

이제 길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다소 가파른 경사로를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주위의 숲은 여전히 Lodgepole Pine 일색인데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덜 밀집되어 있는 대신 한그루 한그루가 훨씬 굵고 우람하다. 각각의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다 기품이 높고 관록이 있어 보인다. 아름다운 솔숲이다.

바윗돌들의 사이로 난 길을 대략 스물 다섯번쯤의 구비를 돌고나면 마침내 정상 0.3마일 아래의 Summit Junction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Tram Route로 올라오는 길과 통합된다. 해발고도 10,496’지역이다.

다시 북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0.2마일을 간다. 1935년에 CCC에서 돌을 쌓아 만들었다는 대피소가 있다. 여기서 약간 왼쪽으로 얼기설기 포개어져 있는 큰 바위들을 타고 0.1마일을 오르면, 드디어 더 오를 곳이 없는 큰 바위덩이에 세워놓은 정상표지에 닿게 된다. 우리 남가주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 10,834’의 Mt. San Jacinto 정상이 바로 이곳이다. 일망무제! 통쾌무비! 5시간쯤에 걸쳐 9.6마일, 5,200’를 올라온 노고의 댓가가, 실로 황홀하고도 장쾌하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