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청객 ‘서브프라임 모기지’ 또 찾아왔나?

2018-04-26 (목)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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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는 달리‘논 프라임’대출도 개명 뒤 증가

▶ 주택가격 급등으로 프라임 대출 기준 완화 추세


주택 시장이 붕괴된 지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당시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서브 프라임 모기지’란 대출 상품이 주택 시장 침체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는 대출 자격이 미달되는 대출자에게 발급되는 모기지 상품으로 고위험 대출에 속한다. 주택 가격이 연일 급등하면서 주택 구입자들의 대출 자격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고 이같은 대출 미자격자들의 수요를 받쳐 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다. 최근 주택 가격 급등 현상이 재현되면서 10년 전 서브 프라임 모기지와 비슷한 대출 상품이 다시 등장했다고 CNBC가 보도했다.

■ 침체 원흉 서브 프라임 다시 등장

10년 전 사상 최악의 주택 시장 침체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대출에서부터 시작됐다. 크레딧 점수가 낮거나 다운 페이먼트 자금이 부족해 일반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경우, 소득이 낮아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대출자들에게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모기지 대출이 발급됐다. 이후 주택 시장이 대규모 침체를 겪은 뒤 회복되는 과정에서 서브 프라임 대출은 사라지는 듯했다.


금융 감독 기관들도 주택 시장 침체 재발을 막기 위해 매우 강력한 대출 기준을 제정해 모기지 대출 시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서브 프라임 대출을 투자 상품화 한 ‘모기지 담보부 증권’(MBS)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사라지면서 서브 프라임의 그동안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와 비슷한 주택 가격 급등 현상이 재현되면서 사라진 줄 알았던 서브 프라임 대출이 다시 슬금 슬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논 프라임’으로 개명 뒤 발급 증가

최근 다시 등장한 서브 프라임 대출은 과거와 다른 이름인 ‘논 프라임’(Nonprime) 대출로 개명했다. 논 프라임 대출을 적극적으로 발급하는 대출 기관들에 따르면 예전과 다른 대출 자격이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논 프라임 대출 기관은 가주 소재 ‘캐링턴 모기지 서비스’(Carrington Mortgage Services)로 최근 논 프라임 대출 발급을 확장하겠다고 당당히 발표했다.

캐링턴 모기지 서비스는 크레딧 점수가 완벽하지 않은 대출자들을 대상으로도 모기지 대출을 발급하고 발급된 대출은 증권 상품화해 투자자들에게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릭 샤가 캐링턴 모기지 서비스 부대표는 “논 프라임 대출을 담보화 한 증권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높다고 확신한다”라며 “새로 발급되는 논 프라임 대출은 무분별하게 발급되던 과거 서브 프라임과는 다를 것”이라고 CNBC와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샤가 대표에 따르면 논 프라임 대출은 수작업을 통한 대출 심사를 거쳐 승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크레딧 점수 기준도 500점대까지 대폭 낮춰 기존 기준에 미달하던 대출자들을 대상으로 모기지 대출 발급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700점대 중반인 일반 모기지 대출 기준 크레딧 점수와 비교할 때 상당히 크레딧 점수 기준을 상당히 낮춘 셈이다. 논 프라임 대출자는 단독 주택, 타운 하우스, 콘도 미니엄 구입 시 최고 150만 달러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논 프라임 대출을 통한 ‘캐시 아웃’(Cash Out) 재융자도 가능한데 최고 약 50만 달러까지 주택 담보 대출을 통해 발급할 예정이다.

차압, 개인 파산, 연체 기록 등 과거 대출 시 걸림돌로 작용했던 부정적인 기록도 논 프라임 대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사실상 과거 서브 프라임 대출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 모기지 담보부 증권화 뒤 투자자에게 매각

논 프라임 대출을 선언한 대출 기관은 캐링턴 모기지 서비스뿐만 아니다. 모기지 대출 기관 ‘에인절 옥’(Angel Oak)은 2년 전부터 논 프라임 대출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를 이미 7차례나 증권 상품화해 투자자들에게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가장 최근 매각된 모기지 담보부 증권 상품의 경우 대출액 규모가 약 3억 2,900만 달러로 평균 약 36만 3,000달러 규모의 모기지 대출 약 905건이 포함됐다. 에인절 옥에 따르면 포함된 모기지 대출 중 약 80% 이상이 논 프라임 모기지 대출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에인절 옥은 현재까지 약 13억 달러에 달하는 모기지 담보부 증권을 투자자들에게 매각했는데 투자자들은 월스트릿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헤지펀드와 보험 업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는 캐링턴 모기지 서비스와 에인절 옥등 2개 대출 기관이 논 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주도적으로 모기지 대출 발급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대형 은행들도 논 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 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 회복과 함께 주택 구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소비자 중 약 5분의 1은 경기 침체 여파로 크레딧 점수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샤가 부대표는 “논 프라임 모기지 대출에 대한 잠재 수요가 크고 논 프라임 대출 담보부 증권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 성장 가능성이 크다”라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전망했다.

■ 일반 모기지 대출 기준도 완화 추세

논 프라임 대출 시장 성장과는 별도로 일반 대출인 프라임 대출의 대출 기준도 최근 완화 추세다. 프라임 대출 기준을 결정하는 국영 모기지 기관 패니매는 지난해 여름 대출 기준을 낮추겠다고 이미 발표한 바 있다. 대출액이 높거나 크레딧 점수가 낮아 고위험 대출자로 분류되는 대출자들에게 추가 다운페이먼트 자금이나 추가 현금 적립금 요구 없이 대출을 발급하겠다는 것이 당시 주요 발표 내용이다.

이후 패니매는 대출 한도를 의미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기준을 기존 45%에서 50%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DTI는 대출자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뜻하는데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DTI 상향 조정이 실시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고 부채 비율 모기지 대출 발급이 급증했다. 2017년 1월 약 6%에 불과하던 고 부채 비율 모기지 대출 발급은 지난 2월 약 20%로 치솟았다.

결국 패니매의 고 부채 비율(45%~50%) 모기지 매입 건수는 지난해 1월과 7월 사이 약 8만 467건에서 2007년 8월과 올해 2월 사이 약 18만 1,911건으로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기지 업계에서는 패니매가 고 부채 비율 모기지를 매입하면서 높은 크레딧 점수 요구와 같은 대출 조건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지만 별다른 대출 조건 변동은 없었다.

국영 모기지 기관의 고위험 모기지 보유 비율이 다시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패니매는 지난달 결국 위험 평가 기준을 재정비하기로 결정했다.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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