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한국 천주교 사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사죄하며’란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한 모 신부의 성폭력 사실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김 대주교는 한국시간 28일 오후 3시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 사제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금치 못하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김 대주교는 “독신의 고귀한 가치를 지키며 윤리의식과 헌신의 종교적 표지가 돼야 할 사제들의 성추문은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교회는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속죄하고, 사제들의 성범죄에 대한 제보의 사실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 교회법과 사회법 규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도 해당 교구는 가해 사제의 직무를 중지시키고 처벌을 위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주교는 “저희 주교들과 사제들은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고귀한 여성의 품위를 교회와 사회 안에서 온전히 존중하고, 특별히 사제의 성범죄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최선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원교구가 한 모 신부를 단순히 ‘정직’ 처리한 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직은 성직자 성무 집행을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것으로, 사제직을 박탈하는 ‘면직’에 견줘 낮은 수위의 처벌이다.
이에 김 대주교는 “법적 절차를 진행하면서 강도를 높일 수 있다. 하나의 과정으로 봐달라”며 “(수원교구에서) 아직 본인으로부터 충분한 소명을 못 들은 것으로 안다.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처벌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천주교가 여전히 가해자를 두둔하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대전가톨릭대 김유정 총장 신부는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그 신부님은 지난 7년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용서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총장은 “평소 약자의 권리 보호에 별 관심이 없던 방송사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가해자가) 보속(속죄)의 의미로 그토록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하고자 했던 것 아니었을까”라고 썼다. 피해자 측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하고 논란이 일자 이 글은 곧 삭제됐다.
이에 대해 김 대주교는 “(김유정 총장의 견해는) 전혀 공식적이지 않은 개인의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한국천주교회를 대표해 주교회의 차원의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김 대주교는 오는 3월 5∼9일 국내 16개 교구 주교들이 모두 참석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 2018년 춘계정기총회’가 열린다면서 “정기총회 기간에 (사제 성범죄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교구 소속 한 모 신부는 2011년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 봉사활동 당시 봉사단의 일원이던 여성 신도를 성추행하고 강간을 시도했다. 피해자는 7년여 동안 피해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최근 미투 운동에 힘을 얻어 언론에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