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194)제33대 Truman 대통령 ⑧

2018-02-09 (금)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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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형인 John F. Kennedy 대통령 정부에서 진보적인 법무장관으로 맹활약을 하게되는 Robert F. Kennedy 가 극히 보수적인 하원의 HUAC 에서 조사관으로 초년병 율사 생활을 시작한것이 ironical 하기도 하지만 Nixon 과 Kennedy 형제의 인연은 오래전 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을 알수있다. 이 조사위원회는 수많은 청문회를 열었었는데 조사에서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는 사람은 무조건 “유죄” 라고 단정 하였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수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미국헌법 제5개정조항이나 “피의자는 범행이 증명될때 까지는 원칙적으로 무죄이다” 라고 하는 미국 법치주의 원리와 전통이 완전히 무시되는 조사활동이 었었다.

이 조사위원회의 월권적인 활동에 따라 억울하게 명예회손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조사의 결과로 원래 입법취지와는 다르게 일부 영화, 라디오, TV 등 예술계와 언론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부당한 “Black List” 가 자동적으로 작성 되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 이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부패한 독재권력의 영속을 위해서 독재자 한사람에 대한 “충성심”만을 기준으로 범직종별로 작성되어 얼마전부터 심각한 공권력 남용범죄로써 문제가 되고있는 우리나라의 터무니없는 “살생부”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HUAC 의 조사활동중 가장 유명했던 case 는 Alger Hiss 라는 저명인사가 처벌받은 사건이었다고 한다. Hiss 는 1933년부터 여러가지 중요한 공직을 거친 사람이었다. 그는 Yalta 회담때 FDR 대통령의 고문이었으며 UN 창립을 위해 San Francisco 회담이 열렸을때 임시 서기직을 맡았었고 1946년에는 명성이 높은 Carnegie 국제평화재단의 총재로 임명 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Hiss 같은 저명한 사회명사도 HUAC 의 유죄단죄을 피할수가 없었었다. 1948년에 쏘련을 위한 간첩이었음을 자백한 Whittaker Chambers라는사람이 Hiss 가 자신에게 정부의 비밀문서를 건네주어 공산주의 첩자가 사진을 찍어서 쏘련에게 넘겨주도록 한후 정부에 도로 가져다 놓았었다고 “폭로” 하였었다.

Hiss 는 Chambers 를 무고죄로 고발하였으나 자신은 간첩죄로 기소되었었다. New York 의 대배심원 재판에서 Hiss 는 자신의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였었고 배심원들의 불일치로 무죄판결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는 1950년에 다시 기소되어 유력한 민주당 인사들의 법정증언과 Truman 대통령의 옹호발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증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3년반동안 옥고를 치렀었다.

그때쯤 미국과 쏘련간의 갈등으로 불안해하던 많은 미국국민들은 Hiss 가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았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도리어 Truman 영도하의 민주당이 공산주의에 약하다는 증거가 나타난것 뿐이라고 생각 하였었다고 한다. Nazis 치하의 독일국민들이 일시적으로 맹목적인 군중심리에 따라 “단결”했었듯이 미국도 짧지않은 기간동안 공산주의 공포에 의한 범국민적 반공 히스테리증세에 빠졌었던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쏘련은 예상했던것 보다 몇년 앞서서 1949년 9월에 원자탄 폭발에 성공하였었다. 이제는 미국만이 원자탄의 독점 국가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침 첫 원자탄 발명에 동참했었던 과학자 Klaus Fuchs 가 1950년 2월에 간첩혐의로 영국당국에 체포 되었다. 그는 1943년부터 47년 사이에 원자탄에 관한 중요한 비밀을 쏘련에게 전해주었 었다고 자백하였었다.

이무렵 장개석은 중공군에 몰려 대만으로 도주하였었고 1949년 10월에는 모택동이 중국본토 전부를 장악하였었다. 미국은 장개석을 꾸준히 원조하였고 장개석과 모택동이 협상하여 단일 중국정부를 수립하도록 중재도 하였으나 양쪽 모두 미국의 중재에 호응하지 않았었다. 미국은 장개석의 독재정치와 정부의 부패를 혐오 하였었으나 중국의 공산화를 방지하기 위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장개석을 지지하였었지만 중국은 결국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미국은 공산주의와의 투쟁에서 쓴잔을 한잔 마셨다고 자인할수밖에 없었었다.

이와같은 미국민들의 불안감속에서 어쩌면 자연스레 싹트기 시작한것이 “국가안보” 와 “반공주의” 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세계에서 가장 군사적으로 강하고 경제적 으로 부유하며 안정이 되어 있던 미국같은 대륙국가가 “공산주의”의 위협을 느꼈었다는 것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었지만 미국은 구체적인 증거도 없으면서 마치 공산주의 국가반역자들이 미국을 전복하려고 침투해있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듯이나 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이때 혜성처럼 나타나서 불안에 떠는 미국민들을 더욱 자극한 Joseph R. McCarthy 라는 Wisconsin 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미국민들이 듣기를 갈망하는 얘기들을 해대고 다녔다. 그는 1950년 2월에 West Virginia 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 국무성에 공산주의 간첩들이 우굴거리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연설중 공산간첩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다는 종이를 휘둘러 대었다. 그후 연설할적마다 같은 종이를 휘둘렸었었으나 그는 단 한명의 이름도 지적하지는 못하였었다. 간첩들의 이름은 하나도 몰랐지만 흥분한 미국사람들에게는 “국무성에 간첩들이 있다더라”는 소문만으로 충분하였었다.


McCarthy 는 미국 양당의 고위 간부들 다음쯤으로 영향력이 커진 정치인이 되었었고 그는 그후 3년여간 대통령도 “두려워하는” 골치거리가 되었었다. 이처럼 “힘센자”들의 편의에 따라 눈에 거슬리는자들을 막무가내로 “국가반역자”로 몰아부치는 것을 ( 마치 한국에서 거슬리는 사람들을 “종북, 친북, 용공분자”로 몰아쳐대듯이 미국에서는) McCarthyism” 이라고 불렀었으며 그때를 McCarthy 시대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것은 Trump 의 등장이후 요즈음 미국이 신 McCarthyism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국민에게 McCarthyism 적 히스테리가 일어나려면 자본주의, 공산주의 같은 강력하게 상충하는 이념의 심각한 대립이 있거나 아니면 지난 1년여의 미국처럼 극도로 불화하고 있는 정당간의 극한적 대립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지난 2017년의 총선거에서 공화, 민주 양당은 공산적대국가인 Russia 의 미국 대통령선거에 개입여부를 두고 또 건강보험, 이민정책과 국제정치등을 두고 심각한 이견으로 충돌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선거 기간중에 있었을 것으로 의심받는 Trump 최측근과 Russia 와의 은밀한 접촉, Russia 부패집권 세력들의 Trump 의 사업에 대한 투자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Robert Mueller 특별검사를 파면시키기 위한 전주곡으로 Trump 의 조종아래 Devin Nunes 라는 하원정보위원장과 Paul Ryan 하원의장등이 하고 있는 무절제한 언동들을 보면 Nixon 의 Watergate 사건개입과 McCarthyism 등의 악몽이 연상된다.

Ryan 하원의장과 Nunez 하원의원 두사람이 “공화당소속”이며 Ryan 은 “Wisconsin 주” 출신이라는 것이 McCarthy 상원의원과 공통된다는점은 우연이 아닐것 이라는 생각이 들며 Nunes 는 Trump 의 대통령직 인수위원이었다는 점도 주목을 끈다. Trump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언동이 McCarthy 수준에 가까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위해 궁지에 몰린 Trump 대통령의 FBI 와 CIA 에 대한 이성을 잃은 공격은 이미 dam 붕괘직전의 위험수위를 넘어선것 같다. 그는 비교적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이 두 기관들을 국익을 위해서 대통령으로서 감싸주어야 한다는 대원칙 같은 것은 전혀 염두에 없어보인다.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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