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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한국의 신약개발 사업

2017-11-13 (월)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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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국에서 팔린 100대 약품 중에서 순수한 한국 제약사 것은 23% 뿐. 한국 사람들의 77%를 살린 약은 미제나 일제였다는 뜻이다.

의약품 시장은 이제 자동차 산업(700조 원)과 반도체 산업(500조 원)을 합칠 정도로 커졌다. 그런데 한국의 제약산업은 꽝이다.

삼성전자가 매출 202조원에 영업이익은 28조원. 그런데 길리어드는 35조 매출에 21조 이익을 냈다. B형간염 치료제 ‘비리어드’ 하나로 유명해진 회사다. 이익률이 삼성보다 4배 이상 높다. 세상에 100원 어치를 팔아서 영업이익 60원 나는 장사가 또 어디에 있을까? 돈 가진 사람들이 신약 개발에 몰리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은 먼 산 보듯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하다.



이제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신약의 파이프라인을 찾아서 블록버스터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0.01%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사업. 그럼에도 의약품은 국민건강의 주권이 걸린 문제다. 이것을 걸음마 단계인 개별 제약회사들에게 알아서 하라고만 할 수도 없고, 미제나 일제 의약품만 계속 사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은 돈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미국은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내가 아는 몇 개 주의 세제혜택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연구개발비(R&D)에 대한 폭넓은 조세지원과 민간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은 한국 정부가 당장 할 일이다. 신약개발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오픈 이노베이션’이 가능할 수 있도록 투자손실에 대한 세제상 보전도 확대해줘야 한다.

동시에 글로벌 빅파마와 싸울 수 있을 정도의 덩치로 키우는 인수합병을 유도하는 세금혜택이 따라줘야 한다. 이것은 좌와 우의 싸움도, 여당과 야당의 싸움이 아니다. 누구나 아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별 기업이 할 일은 더 많다. 안타까운 것은, 나는 아직도 한국 제약회사들이 미덥지 않다. 옛날 약장사 자세로는 안 된다. 의사와 환자, 학계와 정부로부터 받는 전체적인 신뢰수준을 빨리 높여야 한다.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는 11월의 분당 판교. 에드 시런의 Perfect가 흐르는, 어느 커피숍에서 이 글을 썼다. 길 건너 건물에서 있을 제약회사 미팅까지는 30분 남짓. 이제 서서히 일어나야겠다. 이 미팅이 끝나면, 둘째 놈이 더 보고 싶어질 것 같다. 아이비리그를 나왔는데도 연봉 36,000달러짜리 박봉의 신약 연구소에 취직을 한 딸 말이다. 오늘은 커피가 참 달다.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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