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련군이 테러 등 만행” 미군정에 “도와달라”…고 한경직 목사의 비밀청원서

2017-08-17 (목)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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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이 테러 등 만행” 미군정에 “도와달라”…고 한경직 목사의 비밀청원서

고 한경직 목사가 소련군의 만행을 고발한 비밀청원서가 최근 공개됐다.

한국 기독교의 거목 고(故) 한경직 목사가 소련군이 북한 지역에서 저지른 만행을 기록해 미군정에 보낸 비밀청원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서울신학대 박명수 교수는 최근 연방 국립문서기록보관소(NARA)에서 이 문서를 발견했다.

영문으로 쓰인 이 문서는 한경직 목사가 소련군이 점령한 평안북도 일대의 참상을 담아 1945년 9월 26일 서울의 미군정에 도움을 요청한 비밀청원서라고 조선일보가 지난 16일 보도했다. 청원서는 한경직 목사가 신의주제1교회 담임인 선배 윤하영 목사와 연명으로 작성한 A4용지 3장 남짓 분량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우리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기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소련군이 진주해 우리 백성을 약탈하고 많은 비행을 자행하고 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공산당 지배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공산 한국’을 원하지 않는다(We do not want red Korea).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북한 지역은 완전히 황폐해질 것이다. (연합군이) 즉각 위원회를 파견해서 상황을 조사해 달라.”당시 미군정 정치고문이었던 베닝호프는 비밀청원서를 자신의 보고서와 함께 국무부에 보냈다. 베닝호프는 이 청원서가 ‘38도선 이북을 점령한 소련군의 정치 활동에 관한 최초의 믿을 만한 목격자 증언’이라고 평가했다.


청원서에 따르면 일본이 항복한 다음 날인 8월 16일 신의주의 지도급 인사들은 질서 유지를 담당할 자치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8월 30일 소련군이 신의주에 들어오면서 인민정치위원회를 새로 만들고 일본군 무기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주었다. 공산당은 법원 건물을 무력으로 차지해 본부로 사용했고 라디오 방송국과 유일한 지역신문을 빼앗아 공산주의 선전 선동을 시작했다.

또 무력으로 공장과 농지를 접수했고 소련군은 비행기로 선전 유인물을 살포하면서 공산당을 지원했다. 개신교 지도자들은 ‘기독교사회민주당’을 만들었지만 공산당은 그들이 공식 활동을 하면 소련군이 대량 학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한경직 목사는 청원서를 통해 신의주에서 벌어진 테러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9월 16일 대낮에 거리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사람이 공산당원인 경찰의 총을 맞고 죽었다. 살인자는 풀려났고, 평상시처럼 일하고 있다.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이 이에 항의하자, 다음 날 경찰이 몰려와 체포했다.”비밀청원서는 “사람들은 압도적 다수가 공산주의에 반대하지만 공포와 테러 분위기에 사로잡혔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공산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소련군은 철수하기 전 북한 전역을 공산화하려고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고 적었다.

이어 소련군의 비행이 “상상을 넘어선다”며 “신의주에서 소련군은 (은행에서) 120만엔을 가져갔다. 가정집에 침입해 시계부터 여성복까지 귀중품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한 사례는 셀 수조차 없이 많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38선을 넘으면서 소련군에게 약탈과 강간을 당한다”고 폭로했다.

박명수 교수는 “이 비밀청원서는 평안북도 개신교 지도자들이 소련군 진주 후 한 달간 직접 목격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미군정이 소련군과의 관계를 재고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경직 목사는 서울로 온 뒤 영락교회를 세웠으며 지난 2000년 소천했지만 지금까지 진정한 목회자로 존경받고 있다.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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