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해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마틴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부착한 것을 종교개혁의 시발로 보기 때문이다. 년초부터 여행사 마다 종교개혁 유적지 관광코스를 선전하기 바쁘고, 미주 크리스챤 신문도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을 내어 종교개혁의미를 되찾을 것을 강조했다.
종교개혁이 시작된지 500년이 지난 21세기에 우리가 그 사건을 통해서 배울점은 무엇일까? 지난번 독일 방문때 지역 목사님의 권유로 루터가 숨어서 헬라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는 바르트부르크 성을 찾아갔었다. 성 꼭대기까지 30여분을 가파른 계단을 고생하며 올라가 돌아 본 것은 여러 방들과 맨 구석에 루터가 번역일을 했다는 방엔 투박한 나무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괜히 고생만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집에 와서 교회사를 다시 철저히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고 깨우칠 점이 많았다. 보통 종교개혁의 요인을 도적적요인, 지적요인, 사회적요인으로 분류하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했던 것은 교계의 도덕적 타락이었다. 성직 매매의 성행, 신령한 축복을 돈받고 파는 장사를 한 면죄부 판매, 신부들의 독신 생활이 해이해지고, 그들의 문란한 도덕생활이 사회의 지탄을 받았던 것 등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한국의 속담처럼 이런 타락현상의 발원은 교회의 수장이었던 교황이 올바르게 못하고 타락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몇몇 경우만 예로 들어보자.
#1. 인노센트 3세의 교황 수위권(秀偉權)문제 . 1198년에 교황에 선출된 인노센트 3세는 중세의 교황제를 그 권력의 절정에까지 가지고 갔다. 교황의 위치는 모든 인간위에, 하나님 밑에 위치함으로 모든 자상권을 가지고 있음으로 왕도 군주도 그들의 권위는 교황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그들을 제명할수도, 폐위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영국 및 프랑스의 신흥국가 주권자들을 자기의 권력하에 두고 신성로마 제국 황제를 파하기도 했다. 때를 같이 해 이런 지나친 권력투쟁에 반기를 드는 무리들을 가차 없이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종교재판소라는 중세교회의 무기가 등장하고 잡혀온 사람들은 협박, 고문, 감금등 잔인하게 종신형의 수모를 당하든 아니면 화형에 처해졌다.
#2. 성베드로 대성당 건립을 위해 부당한 모금을 한 교황리오 10세. 당시 교황청은 베드로 성당 건립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유럽 기독교 국가들로부터 기부금을 헌납하도록 했고 그 액수가 모자라던차 다른 방법이 모색되었다. 당시 제후였던 알베르트는 대주교직과 주교직을 임명받으며 교황에게 막대한 금액을 지불했었다. 그런데 그는 그 돈을 푸가가로부터 빌렸던 것이다. 푸가가는 로마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알베르트가 그에게 돈을 갚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테젤로 하여금 독일에서 면죄부를 팔게 로마 교황청은 조처하였던 것이고, 이에 분노한 루터는 면죄부의 죄악성을 적은 95개조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교회문에 붙이고 종교개혁의 불을 붙였던 것이다.
#3. 교황청을 더렵혔던 사악한 여인들의 횡포 이 이야기는 너무나 챙피해서 교회사에도 잘 언급되지 않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896년대 이후 교황들의 재임기간이 단명해서 4개월, 1개월, 심지어 20일간의 교황도 있었고, 수명도 모두가 감옥이나 살인에 의해 단명했는데 그 배후에 교황청의 악명높은 두 여인 데오도라와 그녀의 딸 마로지아는 그들의 미모와 창부적 기질을 이용 한때 로마 및 서방교회 전체를 좌지우지 했었다고 한다.
더 경악할 사건은 리오 4세를 이어 영국의 조안이 2년 7개월 동안 교황직을 수행하던 중 남장여자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성난 시민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는 일이었다. 그것도 교황으로서 부활절 행사를 주관하려 행차하던 중 갑자기 출산의 진통이 일어나고, 어쩔수 없이 그녀는 길거리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 그녀의 교황의 망토를 입고 아기와 홀을 들고 있는 석상이 15세기까지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이 이야기들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국왕이든 교황이든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넘어 타락할 때, 돈에 탐욕이나 은혜를 파는 일이 있을 때, 여성들이 감정에 이끌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한국의 국정 농단 같은 부패가 있을 때 하나님은 개혁을 통해 심판하시고 바로 잡는다는 것이다.
끝으로 1521년 4월 18일 보름스 재판에서 자기 주장을 취소하라는 요구에 응답한 마르틴루터의 최후 진술을 들어보자. “ 내 양심은 신의 세계의 포로다. 따라서 나는 내가 한말을 취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겠다. 왜냐하면 양심에 거슬리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고 기릴일도 못되기 때문이다.
나는 달리 어찌 할 수가 없다. 이것이 내 입장이다. 신이여 날 도우소서. 아멘!”금년에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되찾을 때 참된 21세기의 종교개혁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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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수 목사(행복 연구원 길라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