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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하나님 입장 곤란하시겠습니다

2017-04-06 (목) 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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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찾아오는 축구 열풍, 월드컵이다.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기에 애국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기대어 그 열기가 정말 뜨겁다. 나 역시 그 열기의 주인공 중 하나다. 특히, 2002년 월드컵에서 있었던 한국 팀의 승승장구는 지금까지도 골 장면들과 함께 생생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때 어느 게임에서였던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난 하나님께 기도했다. 우리 한국 팀이 골 넣게 해달라고. 그때 베이 지역의 한 교회를 목회하던 어엿한 목회자였고, 신앙과 기도에 대해 늘 고급스런 언어로 교인들을 가르치던 내가 그런 식의 유치한 기도를 하다니! 하지만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셨는지(?) 그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이겼다.

그런 빅게임 경기를 치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경기 상대국인 그 나라 사람들도 하나님께 자기 팀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할 텐데 하나님의 입장은 과연 어떠할까 하는 것이다. “하나님, 정말 입장 곤란하시겠어요, 그 나라에도 기도 들어주셔야 할 사랑하는 백성들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같은 기도를 드리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문제가 한참 뜨거웠을 때다. 소위 ‘친박’이라고 불리는 이들 중 교회 다니는 이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탄핵이 안 되도록 열심히 기도했다. 그것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아주 열심히, 목청을 높여 탄핵 기각을 위해 기도했다. 반면, 그 반대 그룹에 포진한 신앙인들도 기도했다. 그들 역시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대통령의 탄핵 인용을 위해 기도했다. 그걸 보면서 난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나님 정말 입장 곤란하시겠습니다.


이제 결과는 드러났다. 대통령의 탄핵 인용으로 끝났다. 그럼 하나님은 탄핵 주장을 했던 편의 기도를 들으신 것일까?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에 문득 그 축구시합 때 했던 나의 기도가 다시 떠오르는 건 우연일까? 내가 우리나라 이기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아마 그렇게 답하셨을 것 같다. “김 목사야, 그런 식의 기도가 어디 있냐?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축구는 네 나라 선수들이 잘하면 이기는 거고 잘 못하면 지는 거지 그걸 왜 나한테 결정하라고 하냐?” 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 때든, 최근의 탄핵 사건이든, 하나님은 그 모든 게 그 각자의 자연스러운 귀결로 이뤄지도록 놔두신다는 의미다. 오해하지 말라. 기독교의 하나님이 인간의 현실을 방임하는, 소위 자연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기계론적인 신’에 머무는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 매우 인격적인 분이 곧 기독교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성경은 열심히 기도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는 나의 편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요술방망이 같은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꿔주는 친절한 이웃 아저씨 급에 해당되시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 기호에 맞춰 자꾸 조절하려든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신이 아닌 우상이 되어버린다.

요새 구약의 사사기 강해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 중 가장 어두운 시점이 그때였는데, 그 어둠의 증거와 현상들은 그들의 잘못된 신관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이 아닌 활용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하나님을 ‘조절’하려고 했다. 그러니 그들의 예배와 기도는 늘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기도는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내 사적인 목적 달성 때문에 기도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기도 자체가 타락한다. 기도가 타락하면 신앙도, 그리고 삶도 타락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입장 곤란하시겠습니다” 유의 기도를 그쳐야 한다. 하나님의 입장을 내 프레임에 맞춰 조절하려들지 말라.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프레임에 나를 맞추는 연습을 하라. 그런 의식을 갖고 하는 기도가 좋은 기도다. 겟세마네에서의 우리 주님의 기도처럼 말이다.

<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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