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치매와 가족

2016-12-13 (화) 조동혁 <내과·신장내과 전문의>
크게 작게
“저의 남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기는 죽어도 병원엔 가지 않겠다고 하고, 제가 병원에 입원시키면 저를 죽이고 자신도 베란다에서 뛰어 내려 죽는다고 합니다.” “남편은 힘이 넘쳐서 제 고통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의사를 하다보면 가끔 환자들이나 보호자들로부터 비밀 편지를 받는다. 치매를 앓는 초기의 환자는 의심이 많아지고 뇌의 전두엽문제로 인하여 참을성이 없어지고, 화를 잘 내며 성격이 괴팍해지는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환자의 보호자는 진료시간에 환자가 화를 낼까봐 그 문제를 언급할 수가 없고, 의심이 많아진 환자는 자신이 없는 사이에 보호자가 의사와 단독 상담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다. 이렇게 되다보니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비밀편지를 가끔 받게 된다.

위는 얼마 전 필자의 실제 환자의 아내로부터 온 긴 편지의 일부이다. 자녀들은 모두 한국에 있고, 남편과 단둘이 미국에 살고 있는 70대 부부의 모습이다. 이민생활 수십년간 근처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편뿐이었건만, 이제는 남편의 정신과 감정이 돌아오는 약간의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이 남보다 더 무서운 공포, 또는 서러움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문제가 LA의 많은 노인층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노인 부부들은 대부분 둘이서 살고 있으며, 자녀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타지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치매환자, 또는 그의 보호자가 도움을 받을 데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치매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치매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의대를 나온 의사로서, 그리고 내과 전문의로서 적잖은 치매환자를 보며 치료를 한다. 그 이유는 치매에 쓰이는 약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과에서 다 처방을 하고 있다. 또한 치매의 치료는 전반적인 그 환자의 환경, 과거사와 가족상황 등을 인지하고 단순히 환자의 뇌의 치료뿐만 아니라 그 환자의 다른 질병들, 그리고 그 환자의 가족과 전반적인 공동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다보니 많은 경우 그 환자의 주치의인 내과 의사가 치매치료의 담당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종종 치매환자가 아니라 보호자의 정신건강에 대해서 신경을 더 쓸 때도 적지않게 발생하게 되어 내과의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 된다.


지금 LA에는 많은 노인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많은 경우 70대 중반을 넘는 노인층이며, 사별을 하고 혼자 사는 노인도 적지 않고, 자녀들과의 왕래는 아주 드물어진 둘만의 부부들도 부지기수이다. 얼마전 추수감사절 휴가를 보내고 다시 연 필자의 병원에 왕래를 하는 많은 노인 환자분들이 쓸쓸히 혼자서, 아니면 부부 둘만이 연휴를 보냈다는 것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한 12월을 보내고 있다.

치매는 그나마도 고립된 이 노인층의 환자나 그 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게 만든다. 다른 질병보다 정신질환에 대해서 더 숨기고 싶어하는 한국정서는 이런 환자들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치료를 지연시키고 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연말을 맞은 지금,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자신의 부모님들을 한동안 뵙지 않았다면 시간을 내어 방문을 해보라고 강조하고 싶은 밤이다. 자신이 어렸을 때, 감기가 걸려 열이 나는 자신의 몸을 닦아주며 밤샘을 하셨던 부모님들이다. 이제는 그 부모님이 치매가 걸려 정신의 미로에서 울지 못하며, 말도 못하며, 기댈 데도 없이 헤매고 있다. 이럴 때 잠시 뻗은 자녀의 손길은 다섯살 어린아이가 길을 잃고 울며 헤매고 있을 때 어머니의 손길을 잡은 것 만큼이나 반갑고 의지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라고 생각한다. (213)674-8282, www.iVitaMD.com

<조동혁 <내과·신장내과 전문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