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총리가 최근 한 시사주간지와의 대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쁜 점만 물려받았다”고 인물평을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 자리에서 내려오라 해도 절대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사촌형부의 관찰은 틀리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 사상 첫 피의자 신분이 된 대통령은 청와대 문을 걸어 잠근 채 국민들을 상대로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 상황을 ‘이판사판’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그가 평소 그토록 드러내 보이려 했던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 볼 수 없다.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농단 게이트의 몸통은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객관적인 증거는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주장은 국민들이 아니라 수사 주체인 검찰 앞에서 했어야 할 말이다. 아직도 민의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해 나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게이트 대처 방식을 보면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후 보여 온 수많은 문제점들이 응축돼 나타난다. 그 첫 번째는 반복되는 식언과 거짓말이다. 대통령은 임기 내내 별다른 고민이나 갈등의 흔적도 없이 손바닥 뒤집듯 쉽게 식언을 해왔다. 대선 기간 내내 국민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구호는 ‘100%의 대한민국’과 ‘국민행복’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진짜 의중은 ‘최태민 일가의 대한민국’과 ‘최태민 일가의 행복’이었음이 드러났다.
또 이번 사태로 궁지에 몰리자 대국민담화를 읽으며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더니 태도를 180도 바꿔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다. 어쩌면 이리도 한결같이 식언과 거짓말을 반복해 오는 것인지, 그 한결같음만은 ‘원칙’으로 인정해 주고 싶을 정도다. 거짓말을 하는 심리에는 목적과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과 절차, 수단의 정당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그릇된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여전한 ‘남 탓’이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생겨도 남 얘기하듯 하는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그리고 언론 취재를 통해 대통령이 주범이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계속 최순실 탓으로만 돌리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세 번째는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중기준의 예외 없는 등장이다. 그는 재벌들로부터 수백억을 받은 자신의 행위를 선한 의도로 포장하고 있다. 약한 이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는 좋은 일에 쓰려 했다고 주장하는 파렴치범의 궤변과 다르지 않다. 이런 식의 말 장난으로 상황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대통령의 ‘참 나쁜 어법’은 여전하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자신이나 측근의 비리와 잘못이 드러났을 때 법률적 책임만 지는 자리가 아니다. 국가지도자에게는 법률적 책임 외에도 정치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무한 책임이 뒤따른다. 이미 드러났거나 대통령이 시인한 사실만으로도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사유로는 충분하다. 그러고 나서 법률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순리이자 제대로 된 순서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버티고만 있으니 딱할 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 대통령을 위한 고언을 해 주는 참모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 최소한의 명예라고 지키고 싶으면 이제라도 자리에서 내려와 수사에 성실하게 응해야 한다.
국가지도자에게 무능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집과 독선이다. 우리는 지금 무능과 나르시시즘적인 독선이 결합할 때 어떤 파국적인 화학작용이 일어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진정 눈곱만큼의 나라 사랑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국민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막무가내인 대통령을 어이할꼬. 국민 모두가 대통령이 하루속히 미망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하면 혹시 ‘온 우주가 나서’ 도와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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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