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요나서 특강 요지

2016-11-02 (수) 박준서 박사 (연세대 구약학 명예교수)
크게 작게

▶ 요나서의 응보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

사진정의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 우리는 성경에서 배운다.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하고 상대를 갈라세우는 거짓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이 정의며, 당신께서 곧 정의다.하나님께로부터 나는 모든 가치는 하나님과 닮았다. 정의도 그렇다. 요나서에서 악인 응벌을 주창하는 요나는 지으신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피하여 스스로의 판단과 발걸음으로써 그 대척점에 선다.

앗시리아와 그 수도 니느웨는 이 대립각을 극단적으로 확대하여 독자에게 보여주는 대단히 용의주도한 무대장치다. 이 무대는 동일한 주제를 가진 어떤 시나리오도 상연이 가능하다. 오늘 우리에게는 한반도다. 이스라엘 포수기 혹은 그 직후에 기록된 요나서는 예언자 요나가 이스라엘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다.

강대국 앗시리아에 대한 요나의 감정은 이스라엘의 감정이다. 약소국으로 많은 억압에 시달리다 끝내 그 잔인한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남유다도 고초를 겪었다. 그 죄악은 멸망으로 응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요나서의 첫 장부터 일관되게 요나는 앗시리아에게 내릴 벌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줄 알면서도 요나는 자기 생명을 내려놓고 항명했다. 그가 전면에 내건 것은 요나서에 뚜렷한, 지표수 같이 굽이쳐 흐르는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였다.

억지 소극적 순종의 길에서 요나는 최소한의 회개 메시지를 전했다.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씨는 조금도 담지 않았다. 건성으로 던진 몇마디 설교에 놀랍게도 사악한 나라 니느웨가 회개했다. 철저한 돌아섬이었다. 이 사실은 앗시리아의 천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혜를 역설적으로 열어 보인다. 하나님의 강권하심을 빼고 그들의 돌아섬을 설명할 길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는 앗시리아를 용서하셨다.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정했던 징벌을 거두셨다. 당신께서 세상에서 유일한 백성으로 선택하셨던 이스라엘에게 무자비한 억압을 가한 앗시리아에게 회개를 통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은 요나서의 저변을 지하수처럼 흐르는 당신 판단의 근거, 곧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였다.

분배적 정의는 응보적 정의보다 상위개념이다. 전자는 정의가 사랑의 하나님 그 인격에서 우러나는 바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킬 때 당신의 무한한 자비로써 감싸주시는 은혜와 동일시된다. 그 정의가 "분배"로 매겨지는 까닭은 먼저 선택하신 이스라엘에 이미 적용되었고 당시도 적용되고 있던 회개-용서 패러다임이 민족의 경계를 넘어 모든 나라, 심지어 정치-문화는 물론 종교적 적대적 관계의 대명사였던 앗시리아에게도 분배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 구원하신 것은 그들이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되어 당신의 구원은혜를 온 세상에 분배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심이었다. 그런데 요나는 이스라엘만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원했다. 앗시리아에게 구원의 기회를 허락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피할 분이셨다. 하여 당시 세계의 땅끝, 다시스로 도피처를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상위개념은 끝내 하위개념을 지배하는 법이다.

요나의 왜곡된 하나님 정의 이해에 바탕한 불순종은 하나님의 진정한 정의, 곧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는 길을 막아서지 못했다. 따라서 요나서 말미에 그려진 요나의 침묵은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기를 거부하는 요나를 스케치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패역과 말씀 무지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더욱 더 뚜렷한 이미지를 오버랩 하고 있다.

한반도 정황을 놓고 요나서를 읽을 때, 앗시리아의 자리에 북한을 대입할 수 있다. 회개하여 구원의 자리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께서 앗시리아는 물론 북한에게도 허락하신 은총선물이다. 소수 지배자들의 죄악만 주목하고 절대다수 불쌍한 동포들의 생명을 마음 아프게 돌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이미 대한민국과 미국 동포들이 누리고 있는 회개-구원의 은총은 분배되어야 할 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정의다. 평화로운 통일을 꿈꾸는 우리에게 오늘은 자연재해까지 더하여 고통스러운 겨울나기를 염려하는 우리 동포들을 위한 사랑의 나눔과 그들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다.

<정리 조은석 목사>

이글은 박준서 박사가 지난 22일 GTU에서 행한 요나서 특강 내용을 조은석 목사가 정리하여 보내온 내용을 실은것이다.

<박준서 박사 (연세대 구약학 명예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