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체성 구성하는 필수품 등극 시계, 남자의 모든 것이 되기까지

2016-10-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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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구성하는 필수품 등극 시계, 남자의 모든 것이 되기까지
1905년 10월15일자 대한매일신보에는 시계를 시간의 귀중함을 알리고 나를 각성하게 하는 친구로 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 시계를 소유하고 시간을 확인하는 행위는 상류층임을 알리는 사회적 행위였다. 결혼식 때 반지와 시계를 주고받음으로써 정확한 시계가 곧‘사랑의 영원성’을 상징한다고 믿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오늘날 남성용 손목시계 시장 규모는 다이아몬드 약혼반지 시장만큼이나 크다. 손목시계만큼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물도 없다.

1868년 한 백작부인의 손목 위에서 액세서리로 선보인 이후, 여성들의 소품에 불과하다며 빈정대던 남자들은 언제부터인가 손목시계를 필수품으로 착용하게 되었다.

남자들의 필수품으로 손목시계가 주목받게 된 데는 전쟁이란 사회적 사건이 있었다. 1880년에 시작되어 1902년에 마무리 된 2차에 걸친 보어전쟁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영국 제국군과 남아프리카에 살던 백인 개척자의 후손인 보어인이 두 차례에 걸쳐 맞붙은 전쟁이다.


네덜란드 혈통을 가진 남아프리카 토착민인 보어인들을 핍박하자 보어인들은 남아프리카 안쪽으로 들어가 트란스발과 오렌지 자유주라는 두 개의 독립 공화국을 세웠다.

문제는 이 지역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남아프리카 다이아몬드 러시의 중심지가 된 것. 이후 영국제국의 고압적인 영토 수복 운동은 전쟁으로 연결되었다. 수적으로는 보어인들에게 밀렸지만 영국군은 산업혁명 이후, 다양한 소총과 무연화학 등 혁신적인 무기들을 개발했고, 이는 전쟁의 방식을 바꿔버렸다. 병사 개개인의 전투능력보다 전체 군대를 정밀 부품처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어떤 물건 하나를 소유하는 것이 남성의 세계,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때 자동적으로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보어전쟁부터 2차에 걸친 세계대전에 이르는 동안, 손목시계는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근대사회의 효율성과 전쟁을 방불케 하는 노동시장의 속도전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단, 즉 ‘시간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존재의 상징이 되었다.

시간 관리는 곧 남성의 능력과 동일시되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현대사회의 진면목에 적응할 수 있는 남자들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이후 여자의 손목시계는 팔찌시계로 진화하고, 남성만이 손목시계를 차는 존재로 굳어진다.

시간은 모든 변화의 핵심이다. 우리의 본질도 시시각각 변한다. 오늘날의 스마트 시계는 시간 계측을 비롯하여 우리의 건강 체크와 네트웍 관리, 심지어는 감정 조절에 이르는 기능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스마트워치는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모해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로드맵이다. 손목시계가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본질, 바로 만다라의 세계인 것은 이로서 자명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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