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한인 이민자들이 1903년에 세워진 해외 첫 한인교회
▶ 힘들고 고된 농장 생활에도 독립 기금 모아보내는등 조국 독립운동을 뒷받침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당 전경. 1998년에 ‘100주년 기념예배당으로 건립됐다. 본당이 600석 규모이다.
미주지역내 한인교회숫자가 4,251개(2015년말 기준. 크리스천 투데이 집계) 이르고 있는데 이중 미주지역 최초의 한인 교회는 하와이오아후 (Oahu)에 1903년 11월 10일 설립된 하와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이다. 이 교회는 또 해외에 세워진 첫번째 한인교회 이기도 하다. 하와이 첫 이민단 121명은 1902년 12월 22일에 인천항을 떠났다.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호놀루루에 도착한 것은 1903년 1월 13일이었다. 여기서 검역관의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안질이 있는 15명이 다시 상륙허가를 얻을 수 없어 되돌아 가고 86명이 호놀루루에 상륙했다. 그들은 남자 48명,여자 16명,어린이 22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철도편으로 오아후섬의 서북쪽에 있는 와이알루아의 모클래아농장으로 가게 되었다. 이와같이 시작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은 1905년7월까지 65척의 선편으로 총 7,226명이 이민하게 되었다.
하와이에 미주지역의 첫 한인감리교회가 설립 된것은 하와이 이민을 주저하던 한인들을 설득한 이가 선교사 존스를 비롯한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85년사(1988년 발간. 유동식 지음)에 의하면 첫 이민단의 대부분은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솔자는 이민회사의 총무일을 보던 장경화 전도사였으며 통역은 안정수 권사였다. 거기에 인천내리감리교회가 선교의 목적으로 파송한 홍승하 전도사가 동행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어 7천여 이민들 속에는 기독교인이 400여명 있었고 그중에는 교회에서 직분을 가졌던 사람만도 30여명 이었다고 한다. 하와이에 도착한 외로운 이민들은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기도회를 열기 시작했다. 특히 주일이 되면 교회에서 예배하는 미국속의 풍속이 이들을 더욱 자극하여 점차 교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맨 처음에 형성된 것은 이민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던 오아후섬의 가후쿠와 와이알루아의 농장에서였다.
‘평양 미이미교회(감리교회)의 권사 홍치범과 안정수,현순이 합심 협력하여 복음의 진리대도를 전파하기 위해 교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하와이의 중심지인 호놀루루에 한인교회가 창설 된것은 몇달후인 1903년 11월 3일이다. 한인 이민자들의 통역으로 온 안정수 권사와 우병길을 대표로 뽑아 그곳 감리교회 감리사 피어슨 (George L. Pearson)과 교섭하여 ‘한인 감리교선교회’(Korean Methodist Mission)를 조직하고 리버호텔 스트릿에 집을 얻었다.
이와같이 하여 1903년 10월 10일에 첫 예배를 드리니 이것이 오늘의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의 창립 예배가 된 것이다. 창립 예배를 인도한 첫 담임자는 홍승하 전도사였다. 이같이 시작된 한인감리교선교회는 이곳을 거점으로 하와이의 각섬을 두루다니며 흩어져 있는 동포들에게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선교와 교육 문화 활동의 터전 하와이 한인감리교회는 무엇보다 선교하는 신앙공동체였다.
하와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 주일예배(2015.10.4). 김낙인 담임목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교회가 형성되자 마자 각 섬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전도요원들을 파송하였다. 불과 2-3년이 지났을 무렵에 40여개 농장에 각각 교회 또는 전도소를 만들고 일요일 마다 예배를 드리게 됐다. 이와같이 단시일내에 교회가 확산된 데에는 감리교회의 높은 선교적 열정과 한인들의 열정적인 성격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05년 남편 김태윤과 이민 온 부인의 말(하와이 교회 85년사 기록)에 의하면 “한인 이민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어디나 교회가 있었다. 그리고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한인 사회의 중심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교회는 단순한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한인들의 생활을 위한 하나의 센터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한인 감리교회는 또 한인들의 교육과 문화 활동의 터전이 되었다. 초기 이민자의 반수 이상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교회마다 야간학교를 설립하고 그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또 교회가 학교를 설립하여 어린이들에게 미국의 일반 교육과정과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침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미국민이 되도록 교육을 했다. 1905년부터 각 지방의 교회에 국어학교를 설립하고 몇 시간씩 한글을 가르쳤다. 또 하와이 한인교회의 특성은 초기부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는 데 있다.
교회 형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여 동포의 보호와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1905년부터 한인감리교회는 ‘하와이 한인기독교 교회보’를 복사판으로 발간하는등 출판사업도 시작했다. 또 한인 기숙학교(1907년).대동국어학교(1933년),한인사회학교(1970년) 등을 설립해 민족교육에 힘써 왔다. 그리고 한인사회의 권익 신장과 발전을 위한 지주역할로 한인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이와같이 초반을 지나 일제의 지배와 해방과 분단에 따른 전환기를 거쳐 교회로서의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교회 역사 자료실에 의하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는 교회 본연의 일과 아울러 노숙자와 양로원, 병원 선교 활동을 펄쳤으며 해외선교도 힘쓰고 있다. 1998년9월6일에는 호놀루루 키아우모쿠가에 600석 규모의 본당을 비롯해 소 예배실,친교실 등을 갖춘 ‘100주년 기념 예배당’을 완공하여 21세기 태평양 시대 선교사역의 전초 기지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교회역사 자료실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1년5월 당시 교인이 등록교인 1,500여명,주일 예배 출석 800여명,주일학교 출석숫자가 120여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자가 동 교회를 방문한 지난 2015년 10월 4일 주보에 의하면 주일에는 한어예배 4부와 영어 예배,주일학교,중고등부,청년부가 각기 예배와 모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또 이 교회는 한인사회 학교와 기아모경로대학,북 카페를 부설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 교회의 담임 목사는 9년간 목회를 하던 김낙인 목사가 떠나고 한의준 목사(남가주 주님의 교회)가 2016년 7월 1일 22대 담임으로 파송을 받아 목회를 해오고 있다.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100주년이 되던 2003년에는 100년 역사를 사진으로 담은 책자를 발간하여 지나온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교회 주소:Keeaumoku St,Hoonolulu,Hi 9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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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