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뷰
▶ 회고록ㆍ법문집 펴 낸 금산사 조실 월주 스님
월주 스님은 26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간 한국 불교는 수행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측면이 있었다”며 ”이런 풍토를 반성하며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불법(佛法)은 세간에 있으며,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찾는다면 그것은 마치 토끼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하죠.
육조 혜능 대사의 이 말씀을 늘 생각하다 보니 번다할 정도로 많은 소임을 맡아왔네요.”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 금산사 조실(祖室ㆍ사찰 최고 어른)인 월주(81) 스님은 26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 화림서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그의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조계종 출판사)과 법문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민족사)의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월주 스님은 1994년 조계종 ‘개혁종단’ 출범 후 첫 총무원장을 맡아 기반을 닦은 불교계 원로이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및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공동대표와 지구촌공생회, 함께일하는재단ㆍ나눔의 집 이사장 등으로 이름을 알려온 시민운동가이다.
월주 스님은 “고요한 산중 수행이 그립지 않았냐”는 질문에 “평생 수행으로 시작해 수행으로만 끝내는 일은 마치 훈련만 하다 링 위에는 끝내 오르지 않는 일과 매한가지 아니겠냐”며 “한국 불교계도 수행 뿐 아니라 세상에 자비를 베푸는 일을 고민해야 더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또 자비의 실천이 없는 수행을 ‘토각귀모(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 즉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를 찾아 헤매는 일’에 비유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다친 사람은 치료하고, 외로운 사람은 위로해 주는 것. 간단한 일 같지만 결코 쉽지 않아요. 근본고통이 해결이 안되면 부처님 법을 전해도 소화가 안돼요. 조실로 추대됐지만 (이 지위는)법상에 올려 놓고 대중과 살아야죠. 혼자 고고한 산중에 살면 안되잖아요.”
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것은 6ㆍ25전쟁이 끝난 직후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늘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를 갈구하다 친구를 따라 찾은 절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24세에 속리산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3년 만에 금산사 주지가 됐다.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대처승과 비구승의 갈등이 심한데다 비구승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적 필요에 따라 젊은 나이에 중책을 떠맡은 것이다.
“어릴 땐 자주 아팠고, 출가 후에도 각종 번뇌로 병을 앓았거든요. 그런데 화두를 붙들고 3개월간 매달렸더니 점점 마음이 안정되고 몸도 나아졌어요. 세상 모든 것이 연기의 이치로 이뤄져있다는 것, 동체대비(同體大悲ㆍ중생과 자신이 동일체라고 생각하는 큰 자비)를 깨달을 때 번뇌 망상이 사라지는 거에요.”
그가 늘 수행에 그치지 않는 자비와 실천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월주 스님은 “언제 가장 마음이 편안한지, 행복한지를 떠올리면 수행에서 희열을 느낄 때 외에도 마실 물이 없어 고통 받는 이에게 우물을 파주고 완공식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때”라고 했다. 지구촌공생회가 식수난을 겪는 개발도상국에 완공한 우물은 2,300여개에 달한다.
월주 스님은 자신의 수행과 자비행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표현을 거듭 곱씹었다. “지나온 길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내 일을 다 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우리는 계속 이상을 향해 가야 하잖아요. 언제나 이상은 저 앞에 가있습니다. 끝내 완성할 수는 없는 거예요. 부처님을 닮아가려고, 이상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이 중요할 뿐이죠.”
<
김제=김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