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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연애하세요

2016-09-27 (화) 조동혁 <내과·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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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가 넘은 여자 환자분께 “어머님, 연애하세요”라고 내가 말하는 것을 처음 본 간호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처다본 것을 기억한다.

내과를 하는 나의 병원에는 다른병원들처럼 소독약 냄새가 나지 않는다. 내가 레지던트를 끝내고 타주에서 병원을 처음 열었을 때도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원이 아닌 향긋한 향기가 나는 병원으로 꾸미라는 말을 맨처음 했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병원이 아닌 아늑한 느낌을 주는 병원을 만들자고 했더니 어느날 간호사가 노란 바탕의 병원벽에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리는 스티커를 벽을 붙였다. 두세 개의 민들레 홀씨 그림은 나의 진료실을 동요 속에 나오는 편한한 느낌을 주는 방의 분위기로 만들었고 환자들도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은 아주 작은 일로 전쟁이 시작되고, 가정의 부부싸움도 작은 일로 시작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아주 작은 배려가 전쟁을 멎게 하고 평화를 불러오며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게 한다.

최첨단과학으로 급성장한 의학은 그 의학의 지식 또한 너무 많이 늘어나다 보니 의대생들에게 인술보다는 과학적인 진단과 치료만을 가르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게 되었다. 또한 변호사들의 의료소송은 의사들을 더욱 경직하게 만들었고 결국 소송을 받더라도 하자가 없게 하기 위한 무수한 검사와 치료약을 퍼붇는 의학으로 타락하게 만들었다. 결국 의사와 환자는 서로 거리가 멀어지고 불신이 싹트게 된 것이 현재 의학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점이 아쉽다.

물론 과학적인 의술을 하지 말고 인술만 펼치자는 건 아니다. 나는 다른 의사들보다 의료연구를 더 많이 했다고 자부한다. 1993년부터 신장이식, 췌장이식, 심장이식 등의 장기이식 연구와 동맥경화증 연구를 했다. 1997년에 실험간이식 책을 썼고 2004년에는 유전자치료 연구를 했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인 연구경력만을 가지고 과학적으로만 환자를 본다면 몇 년안에 컴퓨터도 의사를 대신해 진료를 충분히 할 것이다.

내가 “시골”에서 의사를 하다가 LA로 이사해서 병원을 시작한지 1년 반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 도시에서 오히려 “나홀로” 외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시골보다 더 많다는 것을 본다. 풍요 속의 빈곤이랄까. 특히 중년을 넘어 미혼이거나 이혼 또는 사별을 한 사람들은 몸이 아프기 시작할 때 더욱 더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결혼을 했고 자녀들이 있는 사람이라도 60대 후반의 여성분들은 미혼여성 못지않은 외로움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런 외로운 분들은 우울증만 오는 것이 아니라 불안증, 만성피로와 관절통이나 근육통, 두통, 속쓰림과 소화불량을 더 많이 호소하며, 면역저하로 인한 잦은 병치레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미혼이거나 이혼 또는 사별을 한 환자를 보면 연애를 하시라는 말을 종종 하게 된다. 꼭 그 상대가 이성의 누군가가 아니고, 자신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활동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중년을 넘어서는 사람들의 외로움, 그리고 더 나아가 우울증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13)674-8282, www.iVitaMD.com

<조동혁 <내과·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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