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에는 청년들과 구약성경 룻기를 읽기로 했습니다. 룻기는 네 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말씀이지만, 책의 제목이 룻기라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룻은 이스라엘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방 민족 모압 출신입니다.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온 외국인 여성입니다. 룻의 출신과 신분을 고려하면 39권 구약성경의 제목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룻은 자신의 이름을 성경에 올렸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도 룻이 등장합니다.
룻기의 배경은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마감하고 약속의 땅에 정착한 사사 시대입니다. 꿈에 그리던 약속의 땅에 들어왔건만, 이스라엘은 광야 시절보다 더 심하게 타락합니다.
룻기 바로 앞에 위치한 구약 성경 사사기의 마지막 다섯 장은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펼치는 막장 드라마입니다. 오늘날 성직자에 해당하는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의 타락에 관여했다는 것 자체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전이 일어나서 한 지파의 남자가 모두 살해되는 비극까지 초래합니다. 우상숭배와 타락, 폭력과 살인, 거기에 극도의 개인주의가 판을 치던 사사 시대가 요즘 세대와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처럼 룻기는 악하고 험한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룻기는 가뭄을 피해서 모압 땅으로 이주한 베들레헴 출신의 한 가족에게 밀어닥친 비극으로 시작합니다. 병약한 두 아들을 데리고 살기 위해서 피난을 갔는데 가장이 죽습니다.
홀로 남은 아내 나오미가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시켜서 10년을 잘 지냈는데 그만 두 아들마저 죽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모압 출신 두 며느리, 즉 남편을 잃은 세 여인만 남았습니다.
결국, 시어머니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두 며느리 가운데 룻만이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나오미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금의환향은 커녕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며느리 룻과 단둘이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인생무상입니다.
이름 뜻 그대로 쾌활한 여인이었을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 즉 쓰디쓴 인생의 여인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렇게 룻기의 1막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듭니다. 보리를 수확하던 때였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놓은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간 것입니다.
그때 룻이 우연히 간 곳이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의 밭입니다. 보아스는 매우 선한 인물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밭에서 모압 여인 룻이 보리 이삭을 마음껏 줍도록 배려합니다.
양식을 충분히 마련해서 돌아온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나오미는 모압 며느리 룻을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에게 시집 보낼 생각을 합니다. 보아스가 추수를 끝내고 타작 마당에서 자고 있을 때, 그에게 슬쩍 들어가서 프러포즈를 하라는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말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룻기의 여인들이 꽤 적극적입니다. 보아스 역시 룻을 흔쾌히 받아줍니다. 보아스보다 룻을 책임질 가까운 친척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의견을 먼저 묻고 룻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오벳, 즉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처럼 룻기의 후반부는 타작 마당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룻기 속에는 주인공들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대목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보이지 않는 손길로 뒷전에서 일하십니다.
모든 이들이 제 뜻대로 행하는 악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룻기의 주인공들은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할 뿐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방 여인 룻을 책임지고 구해주는 보아스를 통해서 우리를 죽음에서 구하시고 책임져 주신 예수님의 모습도 발견합니다.
그런 점에서 룻기의 신앙은 철저히 “생활 영성”입니다. 신앙이 삶 속에 녹아있고, 삶이 곧 신앙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되는 신앙의 모습을 룻기를 통해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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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용 목사/SF 참빛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