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주간 찌들었던 심신… 30여 마일 자전거길에 날려 보내자

2016-09-09 (금)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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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타페 댐~실비치 해변 ‘샌개브리헬 리버 바이크 패스’

주말이면 샌개브리헐 강둑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트레일)를 찾곤한다. LA 동부 아주사길의 샌타페 댐을 시작으로 605프리웨이를 따라 남쪽 끝 실비치 해변까지 30여마일의 한적하고 풍경 좋은 자전거길이다.
공식 명칭은 ‘샌개브리헐 리버 바이크 패스’ (San Gabriel Bike Path). 강둑길을 따라 도심의 딱딱함과 농촌의 한가로움이 수차례 교차한다. 자전거를 타고 한주간 찌들었던 속세의 껍질들을 하나둘씩 바람에 날려 보내는 기분이 쏠쏠하다.

어윈데일부터 볼드윈팍, 엘몬테, 위티어, 피코리베라, 샌타페 스프링스,다우니, 벨플라워, 놀웍, 세리토스, 레익우드, 아테시아, 하와이안가든, 그리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오렌지카운티 실비치의 끝자락 ‘리버카페’까지 장장 32.5마일.

둑길이 이어지는 도시들은 남가주에서 가장 번화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곳 들이지만 일단 이곳에 들어서면 복잡하고 분주한 도심의 일상은 까마득한 옛 이야기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 사과와 오렌지, 꽁꽁 언 찹쌀떡, 간단한 견과류 트레일 믹스를 백팩에 담아 등에 지고 강둑길로 나서면 벌써부터 남으로(실비치를 향해), 북으로(샌타페댐을향해) 내달리는 자전거 무리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어떤 이는 경주용 사이클로, 또 어떤 이는 레저용 일반 자전거로, 바닥에 닿을 것 같이 누워 타는 리컨번트자전거, 커플이나 자녀들과 함께 타는 탠덤 자전거 등등. 온갖 자전거들이 길을 따라 싱싱 내달리며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가른다.

‘러버카페’를 시작으로 화력 발전소를 지나고 철다리를 건너면 ‘5마일’ 지점부터 엘도라도 팍과 마주한다. 울창한 숲길과 한적한 공원, 멀리 활 시위를 당기며 여유롭게 휴일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조랑말과 양, 염소 우리를 지나공원과 골프장을 따라 남북으로 온몸에 땀을 흘리며 달리는 주말 ‘ 마라토너’들,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 가끔은 말을 탄 승마족들과도 조우한다.

기자의 로드바이크 속도는 시속20마일 정도. 바람이 약한 아침 길이라 속도를 더 낼 수도 있지만 초급 실력의 와이프를 동행하다보니 이정도 스피드도 빠른 편이다. 되돌아 올 때를 생각해 체력을 비축해 둬야 하는것도 더 이상 스피드를 아껴야 하는이유 중 하나다.

자전거는 바람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뒷 바람을 지고 타는 자전거는 신바람나게 달릴 수 있지만 맞바람을 받을 때의 자전거 여행은 고행이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강둑 도로는 정오가 가까울수록 바다에서 내륙으로불어오는 바람이 강해 페달 밟기가어렵다. 바닷 바람을 안고 내려와야하는 귀가길의 스피드는 시속 15마일 정도. 실비치를 출발해 샌타페 댐을 돌아 되돌아오는 왕복 75마일은 6시간 코스다.

5번과 605번 프리웨이 교차점 못미처 플로렌스길 옆 공원을 만난다.


작은 호수와 잔디밭, 과일 한쪽과 물한모금으로 갈증을 풀며 휴식 할 수있는 중간 기착지다. 도시는 다우니.

605 프리웨이 옆을 따라 북쪽으로내달리며 샌타페스프링스, 피코리베라를 거쳐 철길 아래를 지나고 굴다리를 거쳐 내륙으로 접어들면서 상승하는 온도를 얼굴로 느낄 때 즈음이면 한적한 시골길이 펼쳐진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며 까마득히 펼쳐지는 강둑 도로가 한없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닭을 키우고 말을 조련하는 농장 옆을 지나 210번 프리웨이 굴다리를 건너면 샌타페댐 아래 ‘그늘집’ (공식 명칭은 아님)을 만난다. 자전거 동호인들의 모여 땀을 닦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28마일지점.

이제 남은 길은 댐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 경사. 스파이크를 신고 상체를 곤두세워 온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 댐 위에 올라서면 뿌연 연무에 뒤덮인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강렬한 햇볕과 맞바람. 정상에 올라선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백팩에서 녹은 찹쌀떡과 과일로 배를 채운 후 맞바람을 맞으며 다시 실비치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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