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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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멸망의 원인이 된 마약

2016-08-09 (화) 김용제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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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독일에서 합성된 암페타민(amphetamine)과 멧암페타민은 아편 다음으로 많이 그리고 오래 쓰여 온 마약이다.

의학적으로 소아정신질환 ADHD에 쓰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각성제로서 널리 쓰이는데 중독성이 강해 많은 나라에서 금지된 마약으로 밀제조 밀매의 대상이고 일본과 한국에서는 종종 뉴스에 나오는 히로뽕(philopon)으로 알려져 있고 미국에서는 bennie, pep pill, speed 등 여러 이름으로 널리 유통되고 있는 마약이다.

이 약의 각성제 효과는 기분을 고양시키고 피곤을 덜 느끼게 하는 것으로 밤새 일하는 트럭운전사나 도박꾼, 운동선수들이 종종 쓰는 것 이외에 오락용으로 주로 쓰이는데 문제는 이에 의존되기가 쉽고 뇌기능에 손상을 주기도 하며 일단 상습자가 되면 끊기가 몹씨 어려운 중독성이 강한 약물로 많은 사용자들을 정신 육체 경제적 파탄으로 몰고간다.


필자의 지인 한 사람의 아들이 이 약에 중독되어 집안이 도탄에 빠지고 무너지는 것을 안타깝게 본 적이 있다.

이런 부정적인 효과를 아직 잘 모르던 2차 세계대전 때에 몇 국가에서 군인들에게 계획적으로 이 약을 사용했는데 미 공군 비행사들이 썼고 일본에서는 전쟁 동안 히로뽕 10억개가 군대용으로 생산됐다고 한다.

이 약을 발명한 독일이 안 쓸리 없어 군인들에게 정기적으로 공급되어 많은 군인들이 중독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승승장구하던 2차 대전 나치독일군의 첫 패배에 큰 요소가 되었다.

러시아를 침범한 독일군이 서남 지역의 대도시 스탈린그라드(Stalingrad) 공격을 시작한 것이 1942년 여름, 처음에는 우세하던 독일군에 소련은 최대 반격전을 벌려 7개월에 걸친 격전끝에 독일장군 파울러스가 다음해 1월 항복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 전투는 2차대전 중 가장 길어 양쪽의 전사자가 180만명에 달해 역사상 한 전투의 희생자 최고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여기서 독일군들 대부분이 매일 이 약을 먹어야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중독자들이었는데 장기간 포위된 이들에게 독일 본토에서의 물자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서 이 약의 공급이 끊어진 것이다. 중독된 마약을 갑자기 끊으면 곧 심한 반응(withdrawal symptom)이 나게 되어 우울증, 불안감, 약에 대한 갈망, 기력과 집중력 감소, 불면증 등 여러 가지 증세에 빠지게 되어 그전까지 용감무쌍하던 군인들이 정신 육체 모두 무기력해져 전투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고 이것이 독일군 패배의 요소로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영구히 집에 돌아가지 못한 수십만명의 포로를 남기고 러시아 전선에서 퇴각이 시작된 이 전투는 2차대전 독일군이 패배로 접어드는 전환점이었다. 히틀러 자신도 이 약에 중독되어 매일 수차례 주사로 맞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가 전문군인 장군들을 제치고 어떤 정세에서도 무리하게 맹목적인 진격만 밀어부치고 우월감에 쌓여있던 것에는 이 약이 크게 역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치의 모렐은 이 약을 포함한 수많은 약을 하루 몇 번씩 주사하는 것이 일이었고 히틀러가 자살하기 며칠 전까지 지속됐다고 한다. 이로써 한 인간은 물론 한 나라의 운명 그리고 세계역사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마약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김용제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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