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성년후견 지정 여부 결정을 위한 정신감정을 받으려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사진)이 입원 사흘 만인 19일 오후 돌연 퇴원했다.
신 총괄회장은 왜 정신감정을 거부했을까.
그 이유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정신감정 결과,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밝혀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질병 장애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피성년후견인’이 될 수 있어 정신감정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성년후견제도’에 따르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정신장애인, 치매노인 등으로 인정되면 성년후견인을 둬야 한다. 과거에는 이들을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로 정의했지만 법 개정을 통해 용어가 폐지됐다.
정신감정은 본인심문, 가사조사와 함께 성년후견 심판을 위한 절차다. 판사는 이들 심리결과를 검토한 후 최종 심판한다. 전문의들은 “정신감정을 거부해도 성년후견 심판은 진행된다”면서 “정신감정을 거부했기에 신 총괄회장 측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 총괄회장이 거부하지 않았다면 정신감정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14일간 심리검사, 신경심리검사, 뇌파검사,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촬영검사 등이 진행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면담도 이뤄진다. 전문의들은 “신 총괄회장처럼 치매가 의심될 경우 이를 판단하기 위해 기억력, 판단력 등 관련 검사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각종 검사와 함께 2주 동안 환자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때문에 질환 자체를 숨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문의들은 “일반적으로 정신감정을 거부하는 일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을 당한 후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등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이 정신감정을 의뢰하기 때문이다.
전문의들은 “롯데가(家)처럼 유산문제가 걸려 있거나 각종 사고로 경제활동을 못할 경우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해 정신감정을 의뢰한다”면서 “극히 일부이지만 보상을 받기 위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가장성 장애’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일용직 근로자 등은 사고를 당하면 생계유지가 어려워 가장성장애에 빠지는 이도 적지 않다”면서 “사고를 당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한 환자가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여성 인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등 황당한 사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