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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 사도바울의 선교 현장을 가다

2016-06-08 (수) 박상일 목사/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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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 사도바울의 선교지및 공동체 유적

소아시아 사도바울의 선교 현장을 가다

바울과 실라가 갇혀있던 빌립보 감옥(행 16:24)

기독교 역사초기 역경속 믿음 지켜며 살든곳역사적 성서적으로 재조명,5명 목회자 공동집필 본보는 사도 바울의 선교현장인 소아시아(터키.그리스) 성지순례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이번 성지 순례기는 북가주 한인연합감리교회 목회자와 성도 50여명과 함께 지난 4월 성지를 다녀온 5명의 목회자가 공동 집필한다.

집필자는 박상일 목사(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버클리 새교회 담임목사). 김홍기 목사( 전 감리교 신학대학 총장), 송예배 선교사(터키 주재). 강혜성 목사(리빙스턴 연합감리교회 담임),권혁인 목사(오클랜드 열린교회 담임) 5명이다.


성지순례기는 여행담과 함께 역사적 성서적 자료를 함께 소개하면서 교회 공동체에 주는 교훈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되새겨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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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마24:2)

위 말씀은 예수님이 무리들에게 잡히시기 전 당시 유대의 지도자들 앞에서 주신 유언 설교의 일부이다. 자신의 가르침은 물론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에 앞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 한다” (마23:2-4)고 지적하신다.

하나님은 일찌기 세상의 모든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제사장 나라의 구별 된 백성”(출19:6)이 되는 특권을 주시고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말것” 등 십계명과 더불어 “이방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며 과부와 고아 및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출22:23)는 사회적 책임을 주셨다.

하나님은 결국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도 당시 예루살렘 성전지기들 및 유대교 믿음의 공동체 에게도 같은 말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든 인류를 섬기라고 하셨으며, 이는 바로 오늘 우리들 기독교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위의 “돌 하나도 돌 위에…”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그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당시 사회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소외된 자들 및 이방인 나그네들을 외면하며, 오히려 하나님이 부여하신 거룩한 제사장 지위와 성전지기의 사명을 자신들의 부와 명예 및 권력 추구의 방편으로 이용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 아니 그들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었는가?


동시에 이 말씀은 같은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오늘날 우리 기독교 믿음의 공동체에도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가?지난 4월 북가주 연합감리교회 목회자 및 성도 약 50여 분이 함께 터키와 그리스를 여행 하면서 사도 바울의 여러 선교지 및 초기 교회 공동체들의 흔적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 대부분이 기억하시겠지만,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이니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그 날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과정 자체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

물론 다녀온 이후에도 다소 불편했던 여행의 후유증과 피로를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여행기간 동안 맛 본 감격과 기쁨이 훨씬 크기에 감사해 하고, 그 여행의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이 후로 성경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그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을 알게 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물론 교회당 건물이 필요하고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사용한 교회 건물이 주는 신학적, 예술적 가치와 신앙형성에 주는 의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큰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기에 할 수 만 있으면 큰 돈과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아름답게 교회건물을 건축하려하고 또 정성을 드려 관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외양으로서의 건물은 절대 영원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라는 단어를 건물이 아닌 사람들 즉 믿음의 공동체를 일컫는 말로 사용한다.

아름다운 건물이 남아 있지만 그 속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 즉 믿음의 공동체가 없으면 그건 더 이상 교회라고 하지 안듯, 제대로 된 건물이 없지만 거기에 살아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있으면 모이는 장소가 사무실이든 천막 안이든 거기는 교회 간판이 있고 사람들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아시아 사도바울의 선교 현장을 가다

그리스 베레아(행17:11)에 있는 사도 바울의 동상



놀라운 것은 터키-그리스 초기 교회 유적지들이 우리가 머리 속에 상상한 모습과는 달리 대부분 황량한 돌무더기들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여행 후 실망을 할 수도 있고 다시 기회가 온다고 해도 그 곳을 다시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성지순례는 단순한 관광이 아닌 신앙여행이다. 단순히 관광을 목적으로 여행을 한다고 하면 구태여 외국인 관광객을 향한 테러위협과 인근 시리아 국경에서의 전쟁으로 매일같이 여러 사람이 생명을 잃고 있는 인구의 99%가 이슬람 교도인 터키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또 IMF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모든 것이 불확실해 400여명이던 한인 이민자가 몇 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 정도로 다 떠나갔다고 하는 그리스를 구태여 여행의 목적지로 삼을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 분들의 염려를 물리치고 우리 일행은 설레는 마음으로 이 지역을 꼭 가 보고 싶었다.

또 가서 감격해 하며 또 나의 경우 다른 분들에게 방문을 적극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이 지역이 기독교 역사 초기 사도 바울과 동역자들 및 그 들을 통해 복음을 접한 수 많은 믿음의 거성들이 역경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던 곳이요,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아 가는 것이 무엇인지 또 오늘과 같은 시대에 복음선교라는 것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터키는 크기로 말하면 한반도의 세 배가 넘는 광활한 땅에 8천여만명에 육박하는 인구가 살고 있다 하니 대한민국의 남북을 합친 숫자정도가 되는 셈이다.

일찌기 한국을 형제국이라 생각하며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병해 3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우리의 우방국 터키이기에,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이 우리를 반기며 또 상인들은 한국어 몇 마디로 환영해 주어 반가왔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교회가 아닌 이슬람 사원이었다. 우리의 가슴과 영혼에 힘을 주는 십자가는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의 건물 위가 아닌 수 백년 전 무너져 내려 황량하게 이리 저리 바닦에 뒹구는 부서진 바위 언저리에서나 겨우 눈에 뜨이는 참담한 현실을 보면서 가슴아파 한 것은 비록 나 혼자 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박상일 목사/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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