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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부자

2016-05-10 (화) 조동혁 <내과·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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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의사학회지 ‘JAMA’에 돈과 건강에 대한 커버 스토리가 실렸다.

스탠포드, MIT, 그리고 하버드 대학의 거물급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진들이 1999년부터 2014년까지 총 14억명의 사람들의 세금보고서와 미국 social security의 사망신고서 자료를 통해 인종과 수입별로 평균생존률을 조사한 자료다.

이 자료에서 수입이 많은 사람들은 더 오래 살며 미국에서 수입 상위 1% 에 있는 부자들은 수입 최하위 1%의 가난한 사람들보다 거의 15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의사로서 여러 가지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필자는 내과 전문의지만 신장내과 전문의로서도 활동하면서 다른 의사들보다 중병의 사람들을 더 많이 치료하게 된다. 특히 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많이 보았는데 지난 10년간 신장병 환자들에게 “부자는 이런 병 안 걸려요”라는 말을 종종 했다. 이런 말을 했던 이유와 부자가 오래 산다는 위의 자료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오래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건강을 앗아가는 대부분의 병은 성인병이며 만성질환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질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점이고 이것 때문에 생존률도 다르다. 또한 질병에 접근하는 생각도 다르며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이는데에도 차이를 보인다.

부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을 못 하는지 인정을 한다. 물론 자기가 뭐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겠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의 관점과 지식을 존중하고 그 추천을 듣는다. 하지만 부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 분야에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더 잘할 수 있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굽히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데 있어서도 같다. 인터넷이나 아는 사람 중에 의사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 이러이러하다는데 라고 말을 하고, 의사의 치료계획을 보고 이건 아닌 것같다며 다른 것은 어떻냐는 식의 말을 한다.

그러면서 그 환자는 자신이 아는 척을 더 해야 의사가 함부로 못하고 잘 봐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의사에 대한 불신이 근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입장은 어떨 것 같은가? 젊어서 혈기가 있는 의사는 환자한테 그게 아니고 하면서 열변을 토하다가 환자와 싸움까지도 하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쌓이면 그런 환자들을 바꿀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몸도 마음도 지치면 의사는 그 방법이 큰 해로운 방법이 아닌한 그렇게 하라고 대답을 하게 된다.

자, 그럼 여기서 치료계획은 진정 누구에 의해서 세워졌나? 의사가 아닌 환자에 의해 세워지게 된 것이다. 결국 최선의 선택을 제시한 의사의 관점은 환자가 "그건 아닌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사라지고 환자가 원하는 것이 치료로 선택되는 것이다. 결국 최선의 방법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이렇게 되면 환자는 오히려 자신의 말이 옳았으니깐 의사가 동의를 했다고 생각하게 되고 우쭐한 마음에 그 다음의 치료계획도 직접 잡아가게 된다.

의사와 싸워서 자신이 이겼다는 것은 절대로 자랑도 아니고 결국 자신의 건강에 좋은 것도 아니다.

의사에게 와서 진료와 치료를 받는 것은 음식점에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거나, 샤핑을 가서 내가 원하는 핸드백을 사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맘에 든다고 약을 먹고, 맘에 안든다고 바꾸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핸드백은 파는 사람이 아무리 좋다고 설명을 해도 손님이 싫으면 좋은 게 아니다. 하지만 의료의 치료는 환자가 원해서 하는 것이 좋은 거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은 자유의 나라다. 결국 그 치료방법을 택할지 말지는 환자의 자유다.

자신의 의사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을 추천받는 방법은 선입견을 갖지 말고 의사의 견해를 듣고 그후에 그 선택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사에게 이건 이래서 안 좋고, 저건 저래서 안 좋다는 식으로 몰아간다면 의사의 추천은 묵살되고 결국 최선의 방법이 아닌 단순히 환자가 원하는 방법이 치료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조동혁 <내과·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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