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무도 민심을 못 읽었다

2016-04-14 (목) 09:16:50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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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간 새벽 4시 - 선거중계 TV에 새누리당 122석, 더민주당 123석으로 나온다. 새누리당의 참패다. 더민주당이 새누리당을 누른다? 이건 보통 현상이 아니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최초의 패전이요 16년 만에 열리는 여소야대의 선거혁명이다. 투표전날 까지만 해도 신문, TV 모두가 새누리당이 최소 145석에서 175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개표 결과 깜짝쇼가 벌어졌다. 종로구에서 정세균이 오세훈을 누른 것을 비롯해 더민주 후보들이 서울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더민주당도 이와 같은 결과에 놀랐을 것이다. 새누리당 서울지역 후보 중 제대로 웃는 얼굴은 서울 중구. 성동에서 당선된 지상욱과 그의 부인 심은하(배우)밖에 없다.

왜 새누리당의 참패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까. 야권이 분열되어 표가 쪼개지리라는 생각이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재인에 대한 호남세의 거부반응으로 더민주가 수도권에서도 새누리에 참패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마저 먹혀들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안철수의 국민의 당을 지지한 표가 더민주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고 새누리를 지지하던 젊은 층이 안철수를 지지한 것이다. 게다가 보수 장년층에서 새누리의 후보공천 내분에 실망하여 투표를 기권한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들이 찍지 않아도 야권분열로 새누리의 승리가 명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누리가 보수세력 결집에 실패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심판론이 봇물을 이루었다. 더민주는 박근혜정부의 경제 심판론, 새누리는 발목만 잡는 야당 심판론, 국민의 당은 싸움만하는 양당 심판론을 내걸었다. 그런데 국민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한 것이다. 오만한 박근혜정부에 회초리를 들었다.
부산에서 더민주후보가 5명이나 당선된 것은 영남에서도 반 박근혜 정서가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박대통령이 인심을 잃은 것이다. ‘박근혜 키즈’ 손수조(부산 사상)마저 선거사무소 대형 플래카드에서 박 대통령의 이름과 사진을 뺐으며
대구 수성갑 김문수 후보 측도 고심 끝에 현수막에서 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뺐을 정도다.

더민주가 잘해서, 김종인이 믿음직스러워서 국민들이 지지한 것이 아니다. 새누리가 압승하면 ‘박근혜의 불통’과 상승작용을 이루어 현 정부가 더 오만해지겠다는 우려 때문에 국민들이 안정보다 견제를 택한 것이다.

새누리의 대패는 누구의 책임인가. 김무성? 이한구? 이 사람들은 새누리당의 간판에 불과한 정치인들이다. 새누리당의 이번 총선은 청와대 작품이며 따라서 선거참패 책임은 박근혜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이번 참패가 박근혜대통령이 야당과 대화를 통해 정치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이기도 하다. 박대통령이 이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박근혜정부 식물화’를 스스로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스타로 떠오른 인물은 국민의당의 안철수다. 녹색바람을 타고 하루아침에 호남의 맹주로 떠오른 것이다. 그가 호남의 맹주가 되었다는 것은 좀 어울리지 않지만 좌우간 그는 제3당 구축에 성공해 캐스팅 보트를 쥠으로써 정국을 리드하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포지션을 마련해 대선주자의 터를 닦아 놓았다.

한국의 이번 총선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는데 특징이 있다. 이는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언론마저 민심을 제대로 못 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에서>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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