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믿지 못할 전문가들

2016-02-10 (수) 10:38:40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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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장 뜨거운 연례 스포츠 이벤트인 50회 수퍼보울이 덴버 브롱코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역시 승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법. 경기 전 수많은 스포츠 채널들과 전문 사이트들은 전문가들을 동원해 승부를 예측했다. 브롱코스의 승리를 점친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3명 중 2명꼴로 대부분은 팬서스가 이길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빗나갔다. 평생 풋볼을 분석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전문가들이지만 승부를 점치는 데서는 일반인들보다 별로 나은 ‘촉’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한 분야에 오래 몸담아 오거나 많은 공부를 해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일반인들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발생하거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면 왜 그런지 꽤나 유려하게 설명해 준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항상 통찰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스포츠 못지않게 전문가들이 맥을 추지 못하는 분야가 경제다. 경제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도는 지난 2008년 세계경제가 급작스럽게 미증유의 침체에 빠졌을 때 이미 크게 주저앉았다. 당시 거의 모든 경제전문가들은 대재앙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장밋빛 전망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극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경기침체를 예견하고 이를 경고했을 뿐이다.


투자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투자조언과 안내를 하는 전문가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이들이 거두는 실적은 별로 신통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투자 전문가들을 계속 찾게 되는 것은 조언이 틀린 경우보다 맞은 경우를 더 깊이 기억하는 사람들의 속성 덕이 크다. 그래서 “투자 전문가가 믿을만한지 판단하려면 그 사람이 부자인가부터 살펴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제목의 책으로 큰돈과 명성을 얻은 로버트 키요사키는 정작 자신의 사업에서는 제대로 성공해 본 적이 없었던 인물이다. 그럴 듯한 내용의 책을 쓰고 전문가 행세를 했지만 그의 배경을 알고 나면 어딘가 속은 느낌을 갖게 된다.

바야흐로 온갖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전문가들이 난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방송채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전문가들이 대접받고 행세하는 세상이 됐다. TV만 켜면 전문가들의 얼굴이 나타난다. 정치평론을 한다는 인사들과 의사들이 특히 호시절을 만난 것 같다.

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되는 얘기 안 되는 얘기를 ‘아니면 말고’ 식으로 늘어놓고, 의사들은 인터넷에 나도는 것보다 별로 새로울 것 없는 내용들을 의학정보랍시고 떠들어 댄다. 24시간 방송을 채우려면 전문가들을 등장시켜 이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말하도록 하는 것만큼 효과적이고도 비용효율적인 방식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명성을 얻고 돈까지 쥐게 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진보적 지식인들은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대표적 진보학자인 이반 일리치는 “전문가들은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주장하고, 다시 문제의 ‘해결사’를 자처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강화해 왔다”며 이런 전문가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욱 무능해진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대개 한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현상들은 대개 여러 분야가 얽혀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전문가들의 지식만으로 인간들의 열망과 열정, 그리고 욕망의 작용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버니 샌더스의 지금을 6개월 전에 예견한 정치 평론가가 있었던가.

큰 판돈을 걸지 않는 한 스포츠 승부 예측이야 그저 재밋거리지만 평생 모아온 돈을 투자하는 일이라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내 자신이 먼저 투자의 속성과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전문가는 자칫 위험한 안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의 조언은 귀 기울일 가치가 있지만 맹신은 절대 금물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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