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사들은 크루즈·힐러리 가장 많이 지지

2016-02-03 (수)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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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우파’ 트럼프엔 냉소

▶ 양당 모두 부동표 엄청 “딱히 표심 줄 곳 없다”

목사들은 크루즈·힐러리 가장 많이 지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왼쪽)이 릭 페리 전 텍사스주지사와 함께 아이오와주에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 기독교인들 대선후보 선호도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종교적으로는 성경을 최우선적인 기준으로 삼고 예배와 기도생활에 가장 충실하지만,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보인다. 미국의 기독교를 지탱하는 남부지역은 이런 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앙생활에서는 어느 지역보다 신실하지만 흑인이나 여성 등 소수계의 권리신장이 비교적 취약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문제가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 심각하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누구보다 먼저 실천해야 하는 기독교인들이 빚어내는 아이러니다.


올해 진행되는 대통령 선거는 어느 때보다 예외적 변수가 판을 치고 있다.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인물들이 주요 대권후보로 떠올랐다.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이고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그에 맞서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는 유대계 사회주의자이며 종교적으로는 다원주의자로 분류된다. 공화당은 한 수 더 한다. 막말과 기행으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는 아예 정치인으로는 상상도 못했던 인물이고, 그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테드 크루즈는 쿠바계 이민 2세로 캐나다 출생이다.

동성결혼이 합법화 된 이후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정치적 판단기준은 최근 크게 변화하고 있다. 정치인의 종교적 가치관과 신앙생활이 지지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로 급부상했다. 아무리 정치적 노선이 마음에 들어도 성경적 가치관이 자리잡지 못한 후보는 비성경적인 정책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이번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 중에서도 가장 극우파로 꼽힌다. 이민 정책에서는 국경폐쇄와 불법체류자 대거 추방 등을 주장해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공적으로 떠올랐을 정도다. 그 덕분에 백인사회의 숨겨진 내심을 자극하면서 예상 밖의 지지를 얻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 백인후보를 응원하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표심은 크게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도널드 트럼프는 오히려 기독교인의 마음을 얻는데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세장에 성경을 들고 나오고, 교회에 출석한다고 주장했지만 효과가 없는 것이다.

지난 1일 실시된 아이오와주 예비선거에서 크루즈 후보는 29%를 얻어 24%를 득표한 트럼프를 따돌렸다. 워싱턴포스트(WP)가 규정한 기준에 따라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이번 아이오와 예비선거 투표인단의 3분의 2(64%)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은 22%에 그쳤지만 히스패닉 2세인 크루즈는 무려 34%를 건졌다. 크루즈의 승리에 그리스도인들이 결정적 한방을 보탠 셈이다.

트럼프에 대한 냉소현상은 목사 사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라이프웨이 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화당 후보들 가운데 크루즈에 대한 목사들의 지지도가 29%로 가장 높았다. 두 번째는 벤 카슨 후보로 10%였으며 마르코 루비오 후보가 8%, 트럼프는 5%에 불과했다. 민주당 후보 중에서는 힐러리 클리턴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아 38%를 차지했고, 샌더스 후보는 23%를 얻었다.

하지만 양당 후보에 대한 지지도 조사에서는 공통적으로 부동표가 엄청난 것으로 나타났다. 개신교 목사의 민주당 후보 지지 현황에서는 31%가 ‘미정’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공화당 쪽에서는 무려 39%가 ‘미정’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공화당에서는 1위, 민주당에서는 2위에 해당하는 큰 수치다.

이런 통계는 디지털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정치 및 경제적 급변, 동성결혼 합법화와 사회, 문화적 충격 등의 와중에서 목사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진퇴양난의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제대로 지지하고 싶은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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