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밧모 섬에 성경보급 19년 ‘눈물의 헌신’

2016-01-26 (화)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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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회 활개로 개신교 불모지 그리스어 성경 등 1만권 배포

▶ ■ 차인수·박영란 선교사 부부

밧모 섬에 성경보급 19년 ‘눈물의 헌신’

차인수, 박명란 선교사 부부가 두 딸인 사랑, 송이와 찍은 가족사진.

예수의 제자인 요한 사도는 그리스의 밧모 섬에 유배된 이후 요한복음과 요한 1서와 2서, 요한계시록 등을 썼다. 성육신으로 이 땅에 찾아온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한 것은 물론 앞으로 열릴 구원의 역사까지 그의 손을 통해 기록된 것이다.

차인수, 박영란 선교사 부부는 19년째 그리스에서 사역하고 있다. 이 중에서 12년을 요한이 숨진 밧모 섬에서 보냈다. 이들은 두 딸 사랑과 송이와 함께 오직 하나님과 본인들만이 알 수 있는 교제 속에서 피눈물과 땀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냈다. 선교사는 가라 하는 곳도, 하라 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따를 뿐이다.

정교회 중에서도 러시아와 함께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그리스에서 개신교 선교사의 역할은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리스는 종교적 자부심과 문화적 우월감이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높은 나라다. 기존의 일방적 선교전략으로는 끼어들 틈도 만들 수 없다.


선교사 부부는 ‘지중해 선교회’라는 작은 단체를 만들었다. 한반도 끝자락 순천 일대의 조그만 시골교회 몇 군데가 겨우 차비를 아껴 후원한다. 하지만 겨자씨는 어느새 자라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있다. 이들이 고대 헬라어와 현대 그리스어로 제작한 신약 성경은 지금까지 1만권이 그리스에 배포됐다. 정교회 문화 위에서 삶을 엮어가지만 정작 성경 한 권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번듯한 파송교회도 없는 선교사 부부가 맨몸으로 부딪히며 제작한 성경은 아름다운 가죽에 담겨 한눈에도 정성이 깃든 선물로 보인다. 성경을 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헬라어 문구가 있다. ‘한국의 형제·자매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섬기는 신학교를 비롯해 상점에도 주고 주택을 방문해서도 주지요. 수도원에도 전달했고요. 또 몇 안 되는 그리스인 교회에는 성경을 나눠주는 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쉽게 뿌리치거나 버리지 못할 만큼 최대한 잘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냉랭하게 대하던 사람들도 성경을 받고는 태도가 변합니다.”

생활고와 딸들의 교육문제로 심각한 고난에 처한 선교사 부부는 중간에 철수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또 다른 임무를 부여하셨다.

“지난 2009년 미국인 선교사들과 힘을 합쳐 꼬로삐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스계 미국인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데 벌써 60여명이 모일 만큼 성장했어요. 2014년에는 아기아빠라쓰께비에 두 번째 교회를 세워 현지인 사역자가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 번째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후원을 모으는 중입니다.”

선교사 부부의 두 딸은 그리스에서 3년을 함께 지낸 뒤 추방명령을 받아 헝가리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다. 가난한 선교사 가정이 떨어져 지내며 쉽게 오갈 형편이 될 리 만무하다. 어린 딸들은 낯선 땅에서 홀로 지내면서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고난을 겪었다. 사춘기를 혼자 감내하고, 홀로 고열에 시달리고, 식량이 떨어져 애타게 부모를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선교사 자녀(MK)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두 딸이 과제로 보낸 편지 첫머리는 “우선 엄마가 우리 친엄마라는 대답을 하시고 이 글을 읽어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역을 하지 않아도 됐어요. 평생 못 갚을 짐을 아이들한테 지워준 셈이에요. 지혜롭게 할 수 있었는데 다 저희 잘못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오히려 성경구절을 보내면서 아빠와 엄마를 위로할 만큼 성장했어요. 한국에서 취직하고 헌금도 보낸답니다.”

박영란 선교사는 남가주와 시카고의 교회를 방문하며 후원을 호소하다 다음 주 돌아갈 예정이다. 선교사의 이메일 주소는 밧모 섬 이름을 딴 patmos1997@gmail.com이다.

문의 (213)271-8105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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