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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사회비판 소설 아니다”

2015-12-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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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리 주립대 강민수 교수, 영문번역본 ‘펭귄 클래식’ 출간

“‘홍길동전’사회비판 소설 아니다”
미주 한인 교수가 영어로 번역한 고전소설 '홍길동전'이 내년 3월 영국 펭귄출판사의 '펭귄 클래식'으로 출간된다. 인류 문학의 고전만 엄선해 출간하는 '펭귄 클래식' 시리즈에 한국 작품이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홍길동전' 필사 89장본을 영어로 번역한 이는 미주리 주립대학 세인트루이스 캠퍼스 역사학과의 강민수(48) 교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을 떠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뉴질랜드, 이란 등에서 거주한 강 교수는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며 뒤늦게 한국어를 배웠다. 유럽 역사를 가르치고 로봇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해온 강 교수는 대학 시절부터 '홍길동전'에 관심을 두다가 번역까지 하게 됐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강 교수는 "대학교 때 세계 의적의 역사를 정리한 에릭 홉스봄의 책 '밴디트'를 읽고 감명 받았다. 법을 위반하지만 약자를 위해 악인과 싸우는 로빈 후드 같은 의적을 세계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고 나온다. 바로 홍길동을 떠올렸고 홍길동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 그때 '홍길동전' 번역이 잘 안 돼 있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미주리 주립대학에 교수로 임용되고서 제대로 된 '홍길동전' 번역에 나섰다. 대량 인쇄 과정에서 편집•재가공된 경판본 대신 가장 긴 필사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해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가 펴내는 영문 문예지 '아젤리아(AZALEA)' 2013년호에 실었고 이것이 펭귄 클래식 편집자 눈에 띄어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작품을 영문 독자에게 편하게 읽히도록 번역하면 한국적인 특징이 없어지고 한국어의 특징을 살리면 그들에게 잘 안 읽히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조금 어렵더라도 글 읽는 사람을 찬찬히 가르치면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인'은 '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this insignificant one)'이라고 쓰는 등 표현을 많이 살렸는데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다."
강 교수는 “'홍길동전'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니 지금까지 작품에 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홍길동전'을 사회 비판소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재미삼아 읽은 대중소설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1933년 김태준이 '조선소설사'에서 '홍길동전'을 허균이 쓴 것이며 허균이 조선시대 유교 사상과 봉건 정치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였다고 부각하면서 홍길동의 활동도 사회주의 혁명 운동으로 표현했다"며 "이런 인식이 지금까지 의심 없이 이어졌고 다들 '아는 이야기니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바뀌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얼 문제는 한국 유교 문화, 한국의 아버지와 아들 사이 독특한 관계를 설명하는 맥에 걸쳐 있어 한국 문화를 알리기에 제격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작품에 투영된 한국의 독특한 문화와 표현을 설명하고자 번역본에 각주를 풍부하게 담았다. '홍길동전'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해설도 책에 담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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