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한국의 여러 전문분야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의료업계 신뢰도가 21.9%로 시민단체 21.5%, 금융기관 20.5%와 비슷한 것을 보고 잘못된 조사가 아닌가 하며 놀랐다.
몇 달 전에 본 미국 내 교포 환자 한 분이 여러 병원과 의사를 거치면서 겪은 쓰라린 심경을 ‘의술인지 상술인지 씁쓸’이란 애처로운 글로 하소연하는 기고문은 미국에서도 비슷한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다섯 사람 중 한 명이 의료계를 못 믿는다는 이 말은 사회적인 이슈 그리고 의료계의 자아성찰을 이끌어낼 만한 일인데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리 싫어도 아프면 병원을 안 찾을 수 없고 시대와 의료제도의 변화에 따른 달갑지 않지만 불가피한 의료계 현실에 굴복하고 모두가 무언으로 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다 보니 오육십년 전을 회상하고 지금과 비교해 보고 싶어진다.
필자는 어릴 때 자주 앓아 병원을 다닌 기억이 많은데 개인집 안의 동네의사, 근처 대학병원 교수들, 반시간 넘어 인력거를 타고 왕진 와주시던 당대 명의 등등의 기억은 흰 가운 입고 아픈 주사로 아이를 울리는 무서운 의사가 아니고 목을 만지고 가슴을 두드리고 배를 눌러보는 포근한 손과 인자해 보이는 인상만으로도 병을 낫게 해주는 것 같았던 기억이다.
그 옛날 의사들은 지금 같이 많은 지식과 의술로 여러가지 병을 고치진 못했어도 그 대신 몸이 아픈 환자의 마음을 다스리고 어루만져 주는 그들의 인술은 높은 신뢰도를 얻는데 충분했던 것 같다.
필자의 반세기 전 미국에서의 의대시절만 해도 의술만큼이나 인술로 환자들을 대하는 존경스러운 교수들이 많았고 프로이드 박사의 제자였던 정신과 주임교수의 모든 환자의 90%가 신체보다도 마음의 아픔이 진짜 병인 걸 잊지 말라고 하던 것이 그때는 잘 이해가 안 됐지만 오랜 경험이 쌓이면서 그 진실을 알게 되는 좋은 가르침이었다.
21세기 의사들은 교육부터 반세기 전과 다르다. 현대의학의 많은 지식과 의술을 충분히 배우기에 4년의 의과대학과 수련의 기간은 너무 빡빡해 인술을 보고 배울 기회란 드물고 환자들의 신임이 두터운 인자하고 존경스러운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롤모델도 많지 않다.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진 의료 시스템과 보험제도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반면에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그리고 계속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의사의 역할이 주로 환자를 대하는 일에서 시스템/제도/정보의 커다란 매체와 환자 사이의 조절에 매달리는 존재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추세로는 앞으로 로봇이 의사를 대신할 때가 올까 봐 두렵다.
오래 기다리다 겨우 몇 분 보는 의사의 눈은 컴퓨터 화면에, 손은 키보드에 가 있고 대화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환자의 아쉬움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이런 현실에서도 환자에게 되도록 많은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 의사들이 아직도 많지만 더 복잡해지는 의료제도와 첨단기술 발달에 파묻혀가는 의료계에서 환자라는 인간을 다루는 의사라는 인간의 터치가 사라지지 않는 모두의 노력 없이는 보도된 것 같은 낮은 신뢰도가 올라갈 전망은 어둡지 않겠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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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제 <안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