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일등석 서비스를 화끈하게 누린 체험기를 블로그에 올려 화제가 된 배상준 일산병원 외과의.“와인은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라는 승무원의 물음에는“다 깔아주세요”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에게 16만 마일의 항공사 마일리지가 있다. 이 중 7만 마일을 쓰면 미주ㆍ유럽 지역을 왕복하는 이코노미석 보너스 항공권을 얻을 수 있고, 8만 마일을 쓰면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또는 비즈니스석에서 일등석으로 좌석을 승급할 수 있다. 4만 마일만 써서 편도로 승급 서비스를 누릴 수도 있다. 좀 더 대담하게는 아예 16만 마일을 털어 넣어 돈 한 푼 안 들이고 일등석 왕복 보너스 항공권을 얻는 방법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대부분은 10여 시간의 불편을 감수한 대가로 또 한번의 해외여행 기회를 마련할 수 있는 첫 번째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과감하게 마지막을 선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폭발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사람이 있다. ‘낭만닥터 SJ’란 필명으로 블로그에 일등석 체험기를 올린 배상준 일산병원 외과의다. 재벌 회장들이나 타는 줄 알았던 국적기 퍼스트 클래스를 나도 탈 수 있다는 혁신적 아이디어! 1원도 안 쓰고 마일리지만으로 대기업 CEO 부럽지 않은 일등석 서비스를 누린 그에게 ‘특급 노하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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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일등석 한식정찬.
“평생 한번은 누려볼 만한 서비스”대한민국의 40대 의사를 평범한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것은 반발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일이지만,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 먹을 일이 일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다는 점에서 그도 역시 보통사람이다. 오로지 목적지(서울-뉴욕 기준)까지 도착하는 데에만 700만원(비즈니스석)에서 1,300만원(일등석)에 달하는 돈을 쓰는 것은 의사라 할지라도 감당 못할 일. 하지만 지불능력이 유일한 기준인 병원 특실, 호텔 스위트룸과 달리 비행기에는 마일리지라는 ‘황금의 제도’가 있다. 꼬박꼬박 착실히 모은 마일리지만 있으면 병원 특실이나 호텔 스위트룸에는 못 묵어도 비행기 일등석은 타볼 수 있다는 것. 그가 마일리지의 달인이 된 이유다.
일등석 윗등급으로 새로 도입된 에티하드항공의 레지던스 거실.
“제 버킷리스트였어요. 언젠가 일등석을 꼭 한번 타보자.” 비즈니스석 승급에서 시작된 그의 마일리지 100배 활용법은 2011년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A380 기종이 국내 도입되면서 퍼스트 클래스의 포부로 부풀었다. 이코노미석에 짐짝처럼 실려 옆, 앞, 뒷좌석 승객과 은밀한 신경전을 벌였던 게 장거리 비행의 추억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비즈니스석만 타도 이런 천국이 또 있나 싶은 게 사실. 비즈니스석이라고 아무나 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블로그를 인용하자면 ‘비즈니스석에 탈 수 있는 경우’는 ▲돈을 아주 많이 벌었거나 부모가 돈이 많을 때 ▲대기업에서 승진, 임원급이 되어 출장 갈 때 ▲종사하고 있는 학계나 업계 등에서 아주 유명한 인사가 되어 초청 강연을 갈 때 ▲항공사에 취직하거나 항공사에 근무하는 배우자를 만난 경우 ▦마일리지 승급이나 보너스 항공권으로 ▲오버부킹일 때(예약자가 모두 탑승할 경우 초과 예약자들에게 승급의 행운이 혜택으로 주어진다)뿐이다. 이 중 첫 번째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당사항이 없고, 2,3번에서 탈락자가 대거 발생할 것이므로 우리의 기대는 마지막 두 가지 경우에 모아져야 한다. 노력으로 이뤄지는 마일리지와 행운으로 이뤄지는 오버부킹 승급제도 중 보다 현실성 있는 것은 당연히 전자.
대한항공 B747-8i 기종의 일등석 좌석. 답답하지 않도록 측면만 슬라이드 도어로 가리고 윗부분은 트여 있게 만들었다.
개미처럼 모은 마일리지로 비행기당 12석뿐인 일등석 항공권을 거머쥐었다면, 이제 당신의 이데올로기는 ‘누려야 한다’다. 부끄러움을 떨치고, 당당하지만 정중하게 서비스를 누리는 게 당신의 사명이다. 승무원이 최상급 샴페인 2종과 화이트와인 3종, 레드와인 4종을 들고 찾아와 “어떤 걸로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낮은 목소리로 젠틀하게 “다 깔아주세요”라고 말한다. 외국항공사라면 영어로 외워두자. ‘Both’ 또는 ‘All of them’. ‘Please’ 반드시 붙일 것. 혹시 너무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 안 된다고 거절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결단코 뿌리쳐야 한다. “사실 좀 창피하기는 하죠. 왠지 회장님들처럼 점잖은 척하면서 한입 먹고 남겨야 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잖아요.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타는 일등석이 아니기 때문에 누려야 합니다.(웃음) 승무원들도 사람이라 정중하게 요구하면 흔쾌히 해주고, 오히려 더 재미있어 하던 걸요.” 이 유쾌한 의사는 와인시음회를 방불케 하는 테이블세팅은 물론 환영의 의미로 나눠준 장미꽃까지 입에 물고 승무원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부끄러움은 한 순간, 추억은 영원히.’ “일등석 열 번 타본 CEO 모드”로 정중하게 말하면 어떤 요구사항도 오케이다.
탑승 전 충분한 휴식은 물론 호텔 뷔페식을 능가하는 음식들로 미식의 대향연을 펼쳐놓았던 퍼스트 클래스 전용 라운지, 독립된 공간에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도록 따로 봐주는 쾌적한 잠자리, 푸아그라 등 최고급 식재료로 만들어져 코스별로 서빙되는 정찬과 난생 처음 먹어본 캐비어, 직접 끓여다 주는 간식용 라면 등 서비스는 모두 좋았다. 하지만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별도 체크인 데스크부터 탑승까지 일대일로 제공되던 에스코트 서비스. “아무래도 일등석 승객들이 주로 대기업 회장님들이다 보니 서비스가 굉장히 격식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대접을 처음 받는 거라 특급호텔에 묵는 것처럼 아주 좋았어요. 공항에서 게이트까지 에스코트 해주고, 라운지에서 쉬고 있으면 데리러 와서 항공기 탑승구 앞까지 배웅을 해주거든요. 그런 각별한 대접은 처음 받는 거라 감동적이었죠. 평생 한번은 꼭 누려볼 만한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하늘길에서 펼쳐지는 럭서리 전쟁세상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고급화를 추구하는 트렌드 속에서 비행기 일등석은 보다 가열찬 럭셔리 전쟁을 펼치고 있다. 에어버스의 A380과 보잉의 B787 드림라이너가 개막한 호화비행기의 시대는 비행기의 얼굴이라 할 일등석에서 각 항공사가 벌이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국적기의 일등석 체험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면 외국 항공사 한 곳을 타깃으로 잡아 마일리지 축적의 묘수를 짜내 보면 어떨까.
하늘길에서의 럭서리 전쟁에서 가장 화려한 두각을 보이고 있는 항공사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근거를 둔 에티하드 항공. 이 무서운 후발 주자는 지난해 말 아예 일등석의 상위등급으로 세계 유일의 ‘기내 펜트하우스’라 불리는 ‘더 레지던스 바이 에티하드’를 도입했다. 욕실과 거실, 침실이 따로 구분된 3룸 타입의 레지던스 좌석은 아부다비에서 영국 런던까지 편도 가격이 2만 달러, 한화로 2,316만원에 달한다.
스타트랙스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항공사(World’s Best Airlines)에서 매년 일등석 분야 1위를 석권하다시피 하는 에티하드는 올해도 ‘2015년 세계 최고의 일등석 항공’ 1위, ‘최고 일등석 기내식’ 1위를 차지했다. 일등석이 아파트먼트 타입과 스위트 타입으로 구분되는 에티하드는 미슐랭 스타 셰프가 직접 기내에 탑승해 조리, 서빙을 담당하는 ‘셰프 온 보드’ 서비스로 유명하다.
사실 고도 3만5,000피트 이상의 기내 압력 하에서는 미뢰의 10%를 잃게 돼 음식 고유의 맛을 느끼기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의 음식이 간이 더 세고, 더 많은 드레싱을 쓴다. 좁은 조리공간과 칼 등 날카로운 조리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항공안전규정 등으로 인해 실제 셰프가 기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승객의 요구에 따라 이미 지상에서 조리해온 음식을 데운 후 약간의 변경을 가하거나 드레싱 등을 추천해 색다른 조합으로 서빙하는 정도. 하지만 승객들은 셰프가 직접 나와 원하는 대로 맞춰 서빙해 주는 기내식에 상당히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고. 일단 조리복을 입은 셰프가 좌석에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시각적으로 상당히 어필한다. 식기는 베라 왕이 디자인한 웨지우드의 크리스탈 글래스(레지던스 클래스)와 일본의 니코, 영국의 스튜디오 윌리엄의 로얄 오크(퍼스트 클래스)를 사용한다.
일등석 기내식 분야에서는 에티하드에 이어 싱가포르항공, ANA(전일본공수), 에어프랑스, 루프트한자가 2~5위를 차지한다. 기내식 2위인 싱가포르항공이 1998년 업계 최초로 도입한 ‘북더쿡’은 출발 24시간 전 미리 기내식 메인요리를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 지난해 9월 한국발 노선에도 도입돼 간장으로 양념한 소갈비찜, 전복이 들어간 삼계탕 등 12가지 메뉴 가 옵션으로 제공된다. 미식대국 프랑스의 일등석은 안타깝게도 올해부터 에어프랑스가 수요 조정에 따라 기종을 변경, 국내에서는 탈 수가 없다.
기내식만큼이나 중요한 퍼스트 클래스의 좌석 디자인은 싱가포르 항공이 세계 1위다. 프랑스 최고의 프리미엄 요트 디자이너 잔 자크 코스트가 디자인한 스위트는 좌석에는 고급스런 가죽 덮개가 씌워져 있고, 맞은 편에는 지방시가 특별 제작한 이불과 등받이 쿠션, 더블 사이즈 침대가 마련돼 있다. 좌석을 침대로 변형하지 않고 단독 침대를 제공하는 건 싱가포르항공이 업계 최초. 좌석 분야 2위는 에티하드항공이며, 그 뒤로는 에미레이트항공, ANA, JAL, 카타르 항공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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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