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홍학 서식처인 나꾸르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경.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처럼 생긴바다가 있다. 내륙 깊숙이 바닷물을끌어들여 크고 둥그렇게 안고 있는곳이다. 숲에 이슬을 보탠다는 아름다운 이름의 가로림만(加露林灣)이다.
절반은 충남 서산이, 또 절반은 태안의 땅이 감싸고 있는 청정해역이다.
항아리 주둥이 같은 가로림만의입구는 서산의 황금산과 태안의 만대항이 투톱의 수문장이 되어 양쪽에 지키고 섰다. 그 입구의 폭은 2.5㎞에 불과해 안개가 심하지 않으면서로를 마주볼 수 있다. 2007년 태안앞바다 기름유출 사고가 터졌을 때청정의 가로림만은 꼭 지켜야 한다며몇 겹의 오일펜스가 쳐졌던 곳이다.
썰물로 드러난 바다를 걸어가는 아라메길의 호리 옻샘 주변 구간. 해질녘 뻘에 올라앉은 허름한 목선이 깊은 울림을 전해 준다.
하지만 일부 기름막이 오일펜스를 넘어서 번져 왔다. 주민들은 만 안으로기름띠가 흘러들자 너도나도 배를 몰고 나와 그 기름들을 걷어내기 위해온 힘을 기울였고, 그 고생과 노력의덕으로 가로림만은 지금의 청정 황금어장을 보존할 수 있었다.
찬바람이 불며 더욱 찰진 바다로변한 가로림만 여행의 시작점은 황금산이다. 가로림만의 끝동네 독곶리,대산산업단지의 공장 굴뚝 너머 솟아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해발 130m지만 바다 바로 옆에 솟아 제법 산의위용을 갖추고 있다.
산의 능선을 넘어가 만나는 해변은 이곳이 과연 서해의 바닷가인가싶다. 남해 해상국립공원의 기암들을옮겨다 놓은 듯한 절경이 즐비하다.
파도가 뚫어놓은 높이 5m가 넘는 코끼리바위가 시선을 잡아끌고, 흙 한줌 없을 것 같은 갯바위엔 노송이 초록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물빛도서해라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맑고 파랗다.
해변엔 모래 대신 네모난 몽돌로가득하다. 네모난 돌들이라 더 많은마찰을 일으켜서인지 밟을 때 나는소리가 다른 몽돌 해변보다도 크게들린다. 그 몽돌이 닳기 시작하며 모서리들이 하얗다. 네모나서 더 시끄러웠던 몽돌들이 이제 날카로움을깎아내고 서로를 닮아가며 함께 둥글둥글해지고 있는 것이다.
가로림만의 해변.
가로림만의 바다는 썰물 때면 거대한 진회색 평원으로 바뀐다. 물이 빠지면 여기 저기 떠있던 섬들이 서로이어진다. 가로림만에서 가장 큰 섬인 웅도도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질때면 유두다리를 통해 건너 들어갈수 있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광활한 갯벌을 조망하기에 이 섬만한 곳도 없다. 이 기름진 갯벌에선 바지락과 굴 등 다양한 갯것들이 생산된다.
웅도에 버금가는 찰진 갯벌이 중왕리 앞이다. 이곳은 낙지로 유명하다.
지난 10월 말 이곳에선 제2회 갯마을 뻘낙지 축제가 열렸다. 이곳의 낙지는 전남 신안 일대의 낙지와 다르다고 한다. 신안 것이 다리가 길고 곧게 빠졌다면 가로림만의 낙지는 상대적으로 다리가 굵다고. 낙지야 사철잡히지만 10~12월이 최고 많이 나고맛있는 계절이란다.
들었던 물이 빠지자 작은 삽을 든채 낙지를 캐러 나선 주민들이 갯벌위를 어슬렁거린다. 어촌계의 아주머니들도 바빠졌다. 안개 낀 갯벌 속으로 마치 그림에 스며들 듯 빠져 들어갔다.
서산의 산과 바다를 함께 거니는느린 산책길,‘ 서산 아라메길’을 걷는것도 가로림만의 진미를 취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바다를 뜻하는우리 고유 말인 ‘아라’와 산을 뜻하는‘ 메’를 합쳐 만든 이름의 길이라고한다. 아라메길 중에서도 산과 바다를 함께 하는 원뜻에 가장 적합한 코스는 4구간. 가로림만의 가장 깊숙한서산시 팔봉면의 호리 일대를 지나는코스다. 서산의 명산으로 꼽히는 팔봉산(364m)을 지나고, 고파도 가는배가 뜨는 구도항부터 바다로 돌출된 호리 일대의 아름다운 해안가를둘러간다구도항을 지나 호리 1리로 가는 길에 ‘구부레’ 혹은 ‘고부레’라 불리는작은 해변에 민물이 샘솟는 ‘옻샘’이있다. 해변 한가운데에 우물처럼 둥그렇게 돌을 두른 샘에는 말간 물이 솟아나 고여 있다. 희뿌연 먼지가 조금떠 있는 그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는데 짜지 않았다. 이 물은 가려움증이나 습진, 옻 오른 데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진다.
벌천포 인근에서 바라본 가로림만의 기름진 갯벌.
옻샘으로 가는 구간은 썰물로 드러난 바다를 걷는 길이다. 매일 바다가 씻어내는, 항상 새 것 같은 길이다.
수명을 다한 듯한 목선 한 척이 갯벌 위에 올라 앉아 석양을 받고 있었다. 배는 움직일 수 없었고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왠지 삐그덕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풍경이다. 지난 세월의모진 풍파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바스러진 목선이 전해 주는 떨림에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그냥 터질 것만 같았다.
서산=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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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