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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 분단 상흔… 무심한 바람·새소리만…

2015-10-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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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전선’ 경기도 연천

켜켜이 쌓인 분단 상흔… 무심한 바람·새소리만…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소장이 DMZ 등에 매설된 지뢰에 대해 설명하 고 있다.

켜켜이 쌓인 분단 상흔… 무심한 바람·새소리만…
고즈넉하다. 오전11시, 삼라만상이 한창 생동할 때지만 이곳에는 바람소리, 하늘을 나는 새소리만 들릴 뿐이다. 가을이 한창 익고 있는 경기도연천의 비무장지대(DMZ)는 보는 이의 상념만 일으켰다. 기자가 선 장소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승전OP’(Observation Post·최전방관측소)다. 앞으로는 울창한 숲, 뒤로는 임진강이 휘돌아 간다.

부대 관계자가 우리를 안내한다.

저기 있는 곳이 우리 군 감시초소(Guard Post·GP)고 그 너머 북한군GP가 보인다. 가까운 곳은 남북한 GP가 겨우 750m 떨어져 있다고 한다.


육안으로 서로가 보일 만한 거리다.

연천에는 과거에 많은 일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1·21 사태를 일으킨 김신조 부대가 통과한 곳이고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 김부의 무덤도 있다.

지난 3일 개천절에 ㈜DMZ관광의 ‘서부전선 평화누리 투어’로 최전선인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을 둘러봤다.

서부전선 DMZ는 이상 없다

개천절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나라를 지키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우리 장병들이 한층 늠름해 보인다. 기자도 겪었던 이런 힘든 군 생활 덕분에 후방의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긴장감이나 경계심도 없지는 않다. 최근 북한의 목함지뢰 폭발 사고가 난부대가 바로 옆에 있다고 한다. 이쪽에도 그런 도발이 발생하지 말라는법이 없다.


그래서 더 서글프다. DMZ나 민간인통제구역선이라고 하면 과거에는 접근금지라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점점 바뀌고 있다.

발상이 흥미롭다. 무조건 꼭꼭 잠그고 있다고 안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개하고 투명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호국정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제는 이 지역에서 군 복무하지 않은 사람도 남녀노소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참호에 서서 보면 바로 앞 이중철책 너머로 울창한 숲이 보인다. 겨우 2㎞ 정도만 가면 북한 땅이다. 그만큼 남북분단에 대한 아픔이 크게 느껴진다. 이 좋은 땅이 전쟁터가 되면서 ‘쓸모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농사짓기 좋은 가을인데도 말이다.

1·21사태 다시보기

경기도 연천군의 승전OP 지역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더 유명해졌다. 바로 북한 제124군 소속 김신조등 31명의 청와대 습격 사건인 1·21사태가 이곳 철조망이 뚫리면서 발생했다. 민통선 철책선 옆에는 1·21사태 때 무장공비들이 철책을 뚫던 모형이 세워져 있다. 역사의 비극이 관광자원이 되는 아이러니다. 이곳을찾은 사람들은 실물 크기 모형을 한번씩 두드려본다. 모형은 무섭기는커녕 우스꽝스럽다.

흥미로운 것은 1968년 1월17일 오후11시 철책이 뚫릴 당시 이 지역을지키는 부대가 미군 2사단이었다는 사실이다. 소대병력인 31명이 아무런저항 없이 철책을 뚫고 침투했는데 몰랐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미군은 처음에 자기구역이 뚫렸다는 것을 펄쩍 뛰면서 부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가 직접 여기에 와서 재연을 해 보이자 입을 다물었다.

미군으로서는 이역 먼 나라에 와서 한밤중까지 공비침투를 막는 데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국방을 타국에 의존하고 있는 민족의 비극이다. 지금은 미군이 후방으로 물러서고 한국군이 전방을 지키고있다.

침묵의 살인자 지뢰

1·21 사태가 발생한 후 국방 분야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뢰의 대량 매설이다. 북한 특수부대 뿐만 아니라 전면적인 남침을 막기 위해 DMZ를 포함해 전국에 지뢰가 깔렸다. DMZ 방문을 위해민통선 초소를 통과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지뢰’라고 쓰인 역삼각형 팻말이다. 무슨 ‘개조심’‘낙석주의’도 아니고 등에 오싹 한기가 흐른다.

국민 대부분에게 지뢰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북괴군을 막기위한 필요악’이라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피해자는 계속 생기고 있다.

지뢰는 서부전선 투어 체험의 중요한 요소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전쟁공포이기 때문이다.

DMZ를 포함해 전국에 100만발이넘는 지뢰가 묻혀 있다. 한국전쟁 후6,000명 이상의 군인·민간인이 지뢰피해를 입었다는 집계가 있다.

더 큰 문제는 후방에 묻힌 지뢰다. 서울 우면산을 포함해 인천·대구·부산 등에도 수만발이 있다. 군부대 등을 지키기 위해 매설된 것이 홍수 등으로 원래 자리를 이탈할 경우 사고의 원인이 된다. ‘침묵의 살인자’ 지뢰는 대상을 찾는 데 아군과 적군은 물론, 전시와 평시도 가리지 않는다. “ 지뢰 숫자만큼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는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소장의 이야기가 소름 끼친다.

신라 경순왕 김부를 회상한다

신라 경순왕릉이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다.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김부의 무덤이 여기에 있는것은 곡절이 있다. 개경(지금의 개성)에 살던 경순왕이 사망하자 유족들과 가신들은 시신을 동경(경주)으로옮기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순왕이 신라 회복의 구심점이 될까 두려워한 고려조정은 왕족은 도성 100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규정을 내세워 남하를 막았다. 그래서 시신은 개성에서 경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이곳 연천 장남면에 묻히게 됐다. 경순왕에 대한 평가는 극과극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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