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벤스 ‘한복을 입은 남자’
▶ 조선 ‘윤두서 자화상’ 사례로 서양문명 선별적 채택 설명

스티븐 리틀 라크마 한국중국미술부장이 한국 미술에 반영된 중국 문명의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 문화원 개최 ‘유럽 중국 한국 비교미술’ 세미나
지난 17일 LA한국문화원(원장 김영산)에서 열린 ‘유럽 중국 한국 비교미술’세미나는 대단히 유익하고 흥미있는 강연회였다. 오랜만에 문화원이 기획한 양질의 행사로, 연단에 섰던 강사들이나 아리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 모두 재미있고 중요한 세미나였다고 입을 모았다.
이 세미나는 중국미술이나 일본미술보다 인지도가 적은 한국 미술을 미주류사회에 좀더 친숙하고 이해하기 쉽게 알리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한국 미술을 동시대 중국과 유럽의 미술과 비교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특별히 세미나 강사들은 각 분야 최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게티 뮤지엄 드로잉부의 큐레이터 스테파니 슈레이더(Stephanie Schrader), LA카운티 뮤지엄 한국중국미술부 부장 스티븐 리틀(Stephen Little), 그리고 해외 최초 한국미술사학자인 버글린트 융만(Burglind Jungmann) UCLA 교수였으며, UC리버사이드의 박종필 미술사 교수가 모더레이터로 참여, 이날 5시간에 걸쳐 심도 깊고 재미있는 전통미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13년 게티 센터에서 열린 ‘동쪽을 보다: 루벤스와 아시아의 만남’ 전시를 기획한 스테파니 슈레이더 큐레이터는 먼저 게티 소장품인 안드레아 만테냐의 ‘동방박사의 경배’와 제이콥 반 오스독의 ‘레몬, 오렌지, 석류 정밀화’에 그려진 명나라 도자기를 보여주며 아시아와 유럽이 서로에게 미친 영향을 설명했다.
이어 루벤스의 ‘한복을 입은 남자’와 ‘중국옷을 입고 있는 예수교 사제 니콜라스 트리컬트’ 및 그의 작품을 복사하여 제작한 윌리엄 베일리의 동판화 ‘사이암 대사’를 비교설명하면서 그림 속 인물이 한국인이라는 것은 어떠한 기록이 남겨져있지 않지만, 의상과 머리장식이 조선시대의 답호와 철릭, 방건으로 짐작되어 조선시대의 인물로 가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스티븐 리틀 부장은 한국 미술에 반영된 중국 문명의 영향을 LACMA의 소장품들을 예로 들어 5개 그룹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고려시대 청동거울의 뒷면에 그려진 두 인물이 도교에서 전래된 유명한 중국의 고사라는 점, 중국 화가들이 자주 그렸던 소상팔경도가 조선시대 화가들 사이에서도 그려졌다는 것, 주자학파가 자리잡고 있던 우이구곡도가 조선 화가들이 종종 소재로 채택한 것, 청대의 저명한 화가이자 미술사학자인 동기창이 조선에서도 잘 알려져 있음을 서술하는 기록지와 함께 동치창이 독특하고 수려한 조선의 종이를 선호했던 일화를 그림과 함께 소개했다. 또한 한국의 서예를 추사 김정희의 다양한 스타일 탁본과 관련하여 분석함으로써 김정희가 당시 중국에서 성행하던 탁본 연구와 그를 활용한 독특한 서체의 발달을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버글린트 융만 교수는 서양문화가 조선시대 미술에 끼친 영향을 소개했다. 당시 중국을 방문한 조선 사절단, 특히 박지원 등의 실학자들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조선은 중국을 통해 태양력 등 서양 과학과 미술을 접하고 있었다. 특히 원근법과 명암을 이용하는 서양 미술이 당시 화가들에게 새로운 기법으로 인식되어 초상화나 문장도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그러한 기법이 겉모습보다는 인물의 성격과 인품의 묘사를 더 중시하는 조선 학자들의 성향에는 맞지 않았음을 ‘윤두서 자화상’과 김홍도와 이명기 공동작품인 ‘서직수 자화상’을 통해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조선시대에는 서양 문명을 잘 인지하고 있었으나 학자나 미술가들이 이를 선별적으로 채택하여 반영 흡수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보다 우리 전통미술을 더 잘 아는 석학들의 강의는 언제나 경이롭고 특별하다. 내부 시각이 아닌 외부 시각에서 바라보고 연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더 많아져야겠다.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