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혼모 아픔·신앙 갈등 담아”

2015-10-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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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노드라마 ‘베이비박스, 하늘소리’ 주연 1.5세 박우정씨

▶ 30일 LA한국문화원 공연

“미혼모 아픔·신앙 갈등 담아”

연극 ‘베이비박스, 하늘소리’의 주인공 박우정씨(오른쪽)와 연출가 조단 전도사.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특히 어린 아기의 목숨은 어른의 손에 달려 있다. 부모는 갓난 자식을 지키고 키우는데 자신의 생명까지 건다. 하지만 부모의 손에서 벗어난 연약한 아기들은 무방비인 채로 생명의 끝까지 끌려간다.

‘베이비박스, 하늘소리’는 배우 박우정씨가 홀로 무대에 서는 모노드라마다. 1.5세인 박씨는 한 시간 동안 핏덩어리 아기를 포기하는 미혼모를 연기한다. 한국의 주사랑 공동체가 버려지는 아기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베이비박스가 이번 연극의 소재다.

오는 10월30일 오후 7시30분 LA 한국문화원에서 막이 오른다.


베이비박스 사역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이와 함께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찬반논쟁도 이어지는 상태다. 주사랑 공동체가 위치한 관악구청은 지속적으로 베이비박스 철거를 요청하고 있다. 베이비박스가 미신고 시설이며 영아의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게 관악구청의 입장이다.

하지만 베이비박스에 대한 일반의 여론은 여전히 따뜻하다. 주사랑 공동체의 사역을 십시일반으로 지원하는 손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동참은 주사랑 공동체 사역의 큰 힘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베이비박스, 하늘소리’는 여고생 수정이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연인의 언어폭력과 냉대 속에서 자살을 결심하는 과정으로 무대를 이어간다. 수정이 본인이 입양아로서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의논할 상대도 변변치 않은 상태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서 수정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느끼고 인생의 희망을 갖게 된다. 어린 나이에 아무데도 기댈 곳도 없지만 뱃속의 아이를 출산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막상 아기를 낳았지만 키울 힘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는 막막한 환경에서 베이비박스에 아기 ‘하늘’을 누인다.

“수정이를 키워 준 할머니는 기독교인이에요. 그렇지만 수정이가 임신을 하자 ‘네가 어떻게 아이를 키우려고 하느냐’면서 아기를 포기하라고 합니다. 아기를 낳은 뒤에도 주변 사람들은 미혼모라고 손가락질하기 바쁘죠. 저 또래의 수정이가 겪는 현실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갈등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남의 일만 같지 않았습니다.”

박우정씨는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 온 이후 경험한 정체성의 혼란과 외로움, 그리고 그 와중에 만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가 필요 없게 되는 게 모두의 꿈일 거예요.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아기의 생명을 구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아무 대안도 없이 베이비박스를 철거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대본대로 연기하는데 바빴지만 이제는 함부로 감정을 왜곡할까 조심스러워졌다고 박씨는 털어놓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미혼모 학생들을 몇몇 봤어요. 나름 아기를 책임지면서 인생을 개척해 나가려 노력하는 모습이었죠.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혼모의 삶이 사실상 절망적이란 걸 알게 됐어요. 정죄하는 시선을 거두고 아픔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박씨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본인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섭리는 결국 이웃을 향한 사랑이고, 하나님 사랑의 범위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문의 (714)931-5498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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