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만의 스타일, 급변하는 패션 속 생존법

2015-09-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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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스타일, 급변하는 패션 속 생존법

유행은 관능자본을 축적하고 유통하는 주기의 반복을 통해 형성된다.

코코 샤넬은 “우리에겐 유충과 나비, 두 존재를 함께 껴안을 수 있는 옷이 필요하다. 아침에는 유충의 상태였다가 밤에는 나비로 변모하는 우리를 위한 옷 말이다”라고 말했다. 매일매일 외양을 바꾸는 인간을 디자이너는 나비에 비유했다. 패션은 변덕스레 변화하는 인간을 감싼다. 최근 내년 봄·여름의 트렌드를 녹여낸 패션위크가 시작했다. 런웨이는 비행기의 이착륙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패션의 런웨이는 시즌별로 새롭게 태어난 디자이너의 룩이 이륙하는 장소다. 대중에게 채택될 경우의 수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비행을 시작한다.

인간의 개성이 농축된 룩의 탄생은 그 옷을 채택함과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에 몸서리치는 인간들을 어루만진다. 언론매체들은 패션쇼를 취재하며 다가올 시간의 유행 코드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도대체가 유행의 개수가 너무 많다. 패션의 변화는 어떠한 이유로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패션의 본질이 변화라고 되뇌지만 정작 변화를 이끄는 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패션을 앞으로 밀어붙이는 힘은 무엇일까?

인간의 성욕은 시각적으로 참신한 것에 매혹된다. 고대부터 여성의 화장기술이 등장한 것은 언제든 건강하게 수태할 수 있는 상태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메이컵은 타인에게 항상 새롭게 보이기 위한 기술이었다. 패션의 변화가 인간의 성감대를 따라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역사적으로 어떤 시대는 가슴을 강조하고 또 손을 보여줘도 발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시대도 있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이 자본처럼 신체의 특정 부위에 응축되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특정 부위가 발산하는 에로틱한 매력이 감할 때, 또 다른 부위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관능자본(erotic capital)이란 말이 나왔다. 관능자본이란 타인의 신체를 바라보는 것에서 유발되는 스릴과 성적 흥분이다. 유행은 이 관능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상당기간 특정 신체 부위를 감춤으로써 신체에 관한 흥미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미국의 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하이힐의 높이가 올라갈수록 바에서 만난 여자에게 기꺼이 도움을 제공하려 하고 적극적으로 접근하려 한단다. 이 실험에서는 굽이 없는 플랫슈즈, 각각 5㎝와 8㎝의 힐을 가진 슈즈를 대상으로 삼았다. 여자가 바에서 실수로 장갑을 떨어뜨렸을 때, 그것을 주워준 남자의 비율이 플랫슈즈, 5㎝, 8㎝ 힐 순으로 62%, 78%, 93%로 나왔다. 여기에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걸기까지 걸린 시간은 힐 높이 순으로 13분, 11분, 7분이 걸렸단다. 힐의 높이가 올라갈수록 남성들의 성적 행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이힐은 여성의 힙을 둘러싼 신체 부위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강조해 줌으로써 성적 매력을 높인다. 하이힐은 신장과 하체의 길이를 보완해 주고 다리의 각선을 살려주어 몸 전체의 각선미를 돋보이게 해 주는 도구다. 하이힐을 신은 모습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인체의 무게는 발에 충격과 큰 압력을 주고 있으며 발가락은 구두 안에서 접혀져 있고 발등이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 있다. 삼각형의 앞부리는 발의 모양도 변형시켜 엄지발가락 아래 뼈가 튀어나오게도 한다. 이러한 구두로 인해 변형된 발의 모습과 인체에 가해지는 고통이 가히 짐작할 만하지만 패션 유행의 리사이클은 지속된다.

현대인들은 정체성이란 단어에 일종의 강박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마치 찰흙처럼 언제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빚어낼 수 있는 세계로 받아들인다. 정체성이 샤핑의 최종 목적이 된 이유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먼은 ‘유행의 시대’에서 현대를 ‘사냥꾼 사회’로 비유한다. 사냥과 쾌감과 흥분, 욕구는 사냥꾼의 진정한 목적이기에 “한번 맛보면 습관이 되고, 내적 필연성이 생기며,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현대적인 의미의 유행의 개념이다.

문제는 이런 유행의 시대에선 삶이 어떤 방향을 향해 흘러가는지 가늠할 기회나 혹은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패션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조립하는 키트다. 새로움은 언제든 사냥할 수 있다, 단 이 새로움에 나만의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스타일이란 인주가 필요하다. 변덕스러운 패션체계 속에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김홍기 /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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