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와 ‘멋진 삶’, 공존할 수 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올해로 90세가 된 한 사람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이야기다.
간암이 뇌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순간에도 그는 특유의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으며,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한 준비가 끝났다. 다가올 ‘새로운 모험’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인생의 ‘절정’이라 표현해온 아내와의 69년간의 결혼생활에 대한 감사를 표했으며, 절대자에 대한 깊은 믿음과 그로부터 말미암은 놀라운 영적 평안함에 대해 언급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음을 알리던 그는 어떻게 그토록 평화로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 이쯤 되니 그가 자신있게 살았다고 한 ‘멋진 인생’의 본질이 궁금해진다.
어울리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멋진 죽음’을 이야기할 때 떠올릴 수 있는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의학계의 시인’,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 교수이다.
<화성의 인류학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으로 잘 알려진 색스는 신경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꾼 선구적 학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투병 중 한 신문에 실은 기고문을 통해 “두렵지 않은 척 하지 않겠다”며, “나는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다. 많은 것을 받았고, 또 돌려주었다. 이로써 지금 내게 남은 가장 강한 감정은 고마움”이라고 고백했다.
더불어 “앞으로 남은 시간을 더욱 풍성하고 생산적으로 살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그들과의 우정을 더 깊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스스로도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던 색슨은 자신의 아픔을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발판으로 삼은 학자였다. 드러내기보다는 감추게 되는 스스로의 약점을 이용하여 비슷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감내해야할 세상의 편견과 싸운 색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더 크게 애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한부(時限附)’는 ‘어떤 일에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둔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죽음의 공포에 담대히 대적한 이들의 공통점이 혹 이 단어의 의미 안에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못한다. 백세시대라며 끊임없이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장수의 비결에 정신이 팔릴수록, 마치 끝이 없다는 듯 살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끝을 알고 또 인정하는 삶은 얼마나 가벼울까. 모든 일에 종착역이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이 관대함과 사랑 같은 아름다운 가치라면, 유한함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이들이 보여준 ‘멋진 인생’으로의 첩경일거라 짐작하게 된다.
이런 깨달음을 조금 더 일찍 살아낼 수 있다면, 그 결정적인 순간에 이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멋진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