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혼여행? “그런 절차 없습네다”

2015-07-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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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도의 결혼식 없는 북한식 혼인 풍습

▶ 친구들과 공원서 사진 찍고 신랑집으로

신혼여행? “그런 절차 없습네다”

아이들에게 “몇 살이지요” 묻자, "다섯 살이에요” 입을 모아 대답한다.

신혼여행? “그런 절차 없습네다”

신랑신부가 친구들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고 있다.

[⑤ 정찬열씨의 북한 여행]

◇모란봉의 결혼 풍경

모란봉 공원에 갔다. 숙소에서 차를 타니 금방이다. 평양은 교통체증이 없다. 안내원과 함께 걸어간다. 공중에서 보면 산 모습이 모란을 닮아 모란봉으로 부른단다. 휴일도 아닌데 사람들이 꽤 많다. 신랑신부가 친구들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고 있다.


신랑은 양복을 입고 가슴에 큼지막한 꽃을 꽂았고, 신부는 한복을 차려입고 머리에 꽃을 얹었다. 신랑 서른 한 살, 신부 스물넷. 직장에서 만나 연애를 했다고 한다. 신랑 집으로 가는 길에 공원에 들러 사진을 찍는중이라 했다.

사회자가 신랑 신부를 세워 놓고, 나무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한다. “이 나무의 나이가 몇 살인지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나무처럼 가지를 치고 오래오래 살아봅시다” 제법 능숙하게 대화를 나눈다. 친구들이 짓궂은 농담을 던진다. “자, 이제 손잡고 걸어갑니다” 사회자가 말하자 신랑신부가 걸어간다. 일제히 축하의 박수를 친다. 신혼여행은 안 가느냐고 친구에게 물었더니 “우리 북조선에선 그런 절차 없습네다.” 한다. 지척에서 또 다른 결혼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다.

발길을 옮긴다. 7~8명의 노인들이 돌계단 위에 비닐을 깔고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다. 빈 술병 몇 개가 보인다. 인사를 건넸더니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나에게 한 잔 권한다. 평양소주다. 은퇴 노인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친구들과 소일하는 게 하루일과라고 했다.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많이 보던 풍경이다. 사람 사는 모습이 어디나 비슷하다.

안내원은 저만치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길가 공터에서 나이든 아주머니 20여명이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한 분에게 “친구 분들과 놀러오셨냐”고 묻자, "자연 군중이라요” 한다. 노래를 틀어놓으면 누구라도 뛰어들어 흥겹게 놀면 된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이 길 따라 내려오고 있다.

20명 정도 두 그룹이다. 선생님을 따라 걸어오는 아이들에게 “몇 살이에요” 묻자, “다섯 살이에요” 입을 모아 대답한다. 소리치는 아이들의 입이참새 주둥이 같다. "소풍 왔나요?” 묻자, 자연학습 나왔다고 선생님이 대신 대답한다.


을밀대를 향해 올라가는데 어떤 할머니가 바위에 앉아 책을 읽고 앉아있다.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보고 계시냐고 물으니 책을 보여주신다.

‘등에’라는 책이다. “무슨 내용이에요, 재미있습니까” 하고 묻자, “이거, 예수 믿지 말라는 책이야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연애결혼 많고 장례는 3일장, 군대는 지원제라고

호텔에 들어왔다. 구내 찻집에 들렀다. 유니폼 입은 아가씨 혼자서 책을 읽고 있다. 정영희, 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어떻게 불러야 하느냐 묻자, ‘처녀동무’ 또는 ‘봉사원 동무’라고 부르시란다.

결혼에 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전에는 중매가 많았는데 요즘은 연애결혼이 많다고 한다.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신부집에 들러 상을 받은 다음, 공원에 들러 사진도 찍고 즐겁게 어울린 다음 신랑집에 가는 것으로 끝난다. 형편에 따라 부모와 친구들을 식당에 초대하여 잔치를 하기도 한단다. 신혼살림은 신부 쪽에서 마련하고, 집은 국가에서 마련해 줄 때까지 신랑 집에서 시댁식구와 함께 지낸다고 했다.

장례는 3일장이란다. 시신을 집에서 모신다. 평양은 화장이 많고 시골은 대체로 공동묘지에 묻힌다고 한다. 장례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기에 약간 놀랐더니, "당연한 일 아닙네까”하고 반문한다. 부의금은 친불친에 따라 약간씩 성의를 표시한다고 했다.

나이를 물어보니 88년생, 우리 아들과 동갑이다. 중학 졸업 후 군대 5년을 복무하고 왔다고 한다. 힘들지 않았느냐 묻자, “군복무는 공민의 신성한 의무입네다” 대답한다. 공부를 더하고 싶어 통신 대학에 등록하여 회계학을 공부하는 중이라 했다.

중학교 6년을 마치면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을 못가면 군에 입대하거나 직장에 근무하게 된단다. 직장은 국가에서 정해준다. 군대는 지원제란다. 학비를 물었더니 “대학까지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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