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이를 먹는 것 (지니 조 / 마케팅 교수 컨설턴트)

2015-06-08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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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나는 담석으로 인한 극심한 복통을 수차례 겪고 드디어 담낭 제거 수술을 결심했다. 별거 아닌 수술이라는데도 내 몸의 일부분을 떼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어느 큰 행사를 앞두고 담낭염이 도져 엄청난 민폐를 끼친 후에야 부랴부랴 수술 날짜를 잡았다.

덕분에 죽을 것 같았던 복통은 없어졌지만 수술 후 체력이 부쩍 떨어졌고 자주 지쳤으며 살이 빠졌다. 살은 한살이라도 젊을 때 빼는 게 맞다. 30대 후반에 아파서 빠진 살들은 전부 주름을 가중시키는데 일조했고, 몇 파운드 날씬해진 대신 얼굴이 나이든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름은 늘고, 기억력은 줄고…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생각에서 헤어나기가 힘들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아름다웠던 지난날에 집착해 자꾸 얼굴 여기저기를 손대다 이상하게 변해버린 할리웃 스타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아이 셋을 기르느라 집에만 있던 친구 하나가 다가오는 자신의 40번째 생일에는 아이들을 떼어 놓고 친구들과 좋은 호텔에서 1박2일 놀다 오겠노라고 공표했다. 40이 되는 그 날, 젊음이 지나간다고 우울해 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짜고, 비키니를 입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고, 어울리는 옷과 신발을 고르는 친구의 모습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넘쳤다.

하루는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은 40대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 적당히 성숙하면서 매력 있잖아?” 지금 40대 후반인 그녀는 자기가 10년만 젊었어도 날아 다녔을 거라고 했다. 그녀가 날아 다녔을 거라는 딱 그 나이인 나는 무심한 듯 내뱉은 그녀의 말이 약간 위로가 됐다.

한국 철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올해 96세이다. 그는 요즘도 곳곳에서 강의를 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며 책도 집필중이다. 그는 고령에도 흐트러짐 없는 건강의 비결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꼽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무리를 하지 않으니 장수하는 것 같다고.

그가 한 인터뷰에서 “우리 인생에서 노른자의 시기는 언제일까 동료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65세에서 75세까지가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이라고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인간적이나 학문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였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 나이였습니다. 오랜 경륜으로 후배들이 질문을 해도 적절한 조언을 해줄 능력이 생기더군요” 라고 했다.

나보다 무려 두배 이상을 산 노교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나이 들어도 꾸준히 공부하고 여행하고 연애하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정신적 자극을 주며 살아가는 모습은 내가 바라던 노년의 모습이었다. 나이 들어 뒤늦게 독일어를 배워 괴테의 책을 읽으며 행복을 느낀다는 그가 부러웠다. 40도 안 되어서 나이 먹으니 판단력도 가치관도 흐려진다고 불평했던 내가, 65세가 가장 아름다웠다는 인생의 선배 앞에서 고개가 숙여졌다.

김형석 교수의 인터뷰 끝자락이 인상 깊다. “소망이 있다면 앞으로 1-2년만 요즘처럼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과 기쁨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았으면 합니다. 그거 못하면 데려가셔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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