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16년 대선 정가에서 보수 해설가들이 즐겨 쓰는 어구가 있다. “똑, 똑, 똑(drip, drip, drip)” -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 떨어지듯 매일매일 흘러나오는 힐러리 클린턴 관련 구설수 보도를 빗댄 표현이다. 1990년대 중반 빌 클린턴 백악관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온 온갖 스캔들도 “드립. 드립, 드립”으로 풍자되었으니 20년만의 리바이벌인 셈이다.
민주당 선두주자 힐러리를 둘러싼 ‘이른바 스캔들(힐러리 팀은 별 것 아니라며 이렇게 표현한다)’이 좀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벵가지 청문회와 엮이면서 계속 조명되는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사용 논란도 그렇지만 클린턴재단의 기부금과 거액의 강연료 등 천문학적 액수가 오가는 ‘돈 스캔들’은 하루가 멀다고 새 측면이 보도되면서 점차 비화되고 있다.
보수저술가 피터 슈바이처가 클린턴 가족의 자선재단 내막을 파헤친 저서 ‘클린턴 현금 : 클린턴 부부를 부자로 만든 외국정부와 기업들의 비법’ 출간을 전후로 돈 스캔들은 시작되었다. 힐러리의 국무장관재임 중 클린턴 재단에 거액의 후원금을 낸 외국 정부와 기업들이 국무부로부터 대가성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을 심층 분석한 이 책은 진보언론들까지 뛰어들어 후속 기사를 경쟁 보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힐러리 측은 “터무니없는 음모론”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속속 드러나는 내용은 힐러리 지지자들에게도 개운치 않은 의구심과 우려를 남기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지난 주 국제축구연맹(FIFA) 고위관계자들이 스위스호텔에서 줄줄이 연행된 후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클리턴 재단은 부패온상으로 지목된 FIFA로부터 기부금을 받았으며 그들에게 뇌물을 주고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되었다는 비난을 받는 카타르로부터도 수백만 달러의 기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미국민들을 당황케 했다.
인권보고서가 알제리 부패정부의 인권침해를 강력히 비난했던 2011년, 알제리정부는 클린턴재단에 50만 달러를 기부했고 이듬해 국무부는 알제리에 무기 수출을 승인했다, 러시아에 우라늄 광산판매로 엄청난 이득을 챙긴 캐나다 광산재벌은 클린턴 재단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역시 수천만 달러 후원금을 낸 스웨덴 기업들은 핵 개발 중인 이란과 거래를 하면서도 미국의 블랙리스트에서 제외 되었다, 힐러리 국무부가 무기 수출을 승인한 국가 중 20개국은 재단 기부자였으며, 뛰어난 기업 수상자 8명 중 6명도 기부자였고…
클린턴 부부의 연설료도 힐러리의 선거 테마 ‘평범한 미국인’에겐 눈이 돌아갈 엄청난 액수다. 2001~2012년 사이 빌 클린턴이 올린 연설수입은 무려 1억500만 달러로 최고액수는 힐러리 국무장관 재직 중 외국기업에서 받은 것이다. 나이제리아 미디어기업에서 140만 달러, 스웨덴 통신회사 75만 달러, 네델란드 금융회사 60만 달러, 러시아 투자회사 50만 달러…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액의 기부금과 강연료가 힐러리 국무부와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비판자들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고 억울해하지만 제기된 의혹 중 어느 하나도 ‘위법’이 아니다. 힐러리는 취임시 약속대로 이해상충처럼 ‘보이는 것’도 피했다고 주장하고 남편 빌은 고액 연설은 국무부 윤리담당 변호사들로부터 모두 사전승인을 받았다고 LA타임스의 도일 맥마너스는 전했다.
선거의 계절엔 불법여부만 중요한 게 아니다. ‘스캔들’은 버섯구름처럼 피어나고 있는데 힐러리 진영에선 이렇다 할 대응이 나오지 않았다. “국무장관 시절 클린턴재단의 기부금 관리에 대해 후회하나? 당신들이 법 위에 있다는 비난이 심한데…” 기자 질문에 힐러리가 이렇게 답한 게 전부였다. “난 재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미국민의 판단에 맡길 것이다”
힐러리 팀의 전략이 무시인지, 초연인지, 아니면 자만인지 알 수는 없지만 ‘스캔들’을 방치한 후유증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정치적인 국무장관에서 양극화 정치의 선봉에 선 대선 후보로 바뀌면 지지도는 하락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틀 전 발표된 두 개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힐러리의 지지도는 예상보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두 달 전 과반을 넘었던 호감도가 45%로 2008년 대선 첫 출마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스캔들’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신뢰도다. “정직하고 믿을만하다”는 응답이 38%에 그쳤다. 56%가 아니라고 답했다. 신뢰도가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단정하긴 힘들지만 결코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민주당 내 힐러리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본선은 다르지만 다행히 최근 여론조사들에서 힐러리는 공화당 모든 주자들에 앞서고 있다. 특히 강한 리더십 부문에선 60% 이상의 폭넓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는 있다. 빌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했던 1996년 선거당일 출구조사에서 54%의 유권자가 그에 대해 “정직하고 신뢰할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었다. 스캔들은 선거 내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힐러리 역시 남편처럼 신뢰도 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선택의 고민은 유권자의 몫이다. 우리 보통사람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공감능력을 가진 대통령을 뽑으려면 누구를 택해야 할까. “강력한 리더십과 풍부한 경험의 준비된 후보?” “신뢰할만한 정직한 후보?” -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역사성 못지않게 심사숙고해야 할 중요한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