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늦깎이 대학생

2015-01-19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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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니 조 / 마케팅 컨설턴트·교수

새 학기가 시작됐다. 솔직히 새 학기를 맞이하는 마음이 마냥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꽤 만족스럽다고 느끼지만 ‘새학기’라는 것은 늘 약간의 설렘과 함께 일상의 관성을 깨야 하는 좀 큰 강도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단순한 게으름일 가능성도 많지만 강의 계획서 짜야지, 강의 준비해야지… 귀찮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가지 늘 설레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학생들과의 만남이다. 이번 학기에는 어떤 학생들을 만나게 될까 긴장했다가도, 막상 강의실에서 나보다 더 긴장된 눈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마주하고 나면 알 수 없는 안도감 같은 것이 생긴다.

학교에 있다 보면 종종 나이 든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의 학생들이 대부분인 강의실에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학생도 있었고, 아들과 함께 입학했다는 아줌마 학생도 있었다. 남들 다 가는 길을 당연한 듯 걸어왔던 나는 늦깎이 학생들이 신선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가지 이유로 대학 진학 대신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날이 갈수록 배움에 대한 갈증이 깊어져 비장한 결심을 하고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늦깎이 학생들을 마주하면 두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는 나보다 많이 알고 있으면 어쩌지 라는 매우 단순하고 개인적인 걱정이고, 둘째는 본인들 보다 한참 어린 학생들과 잘 지낼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다.

내가 몇 년에 걸쳐 관찰한 바에 의하면 늦깎이 학생들은 지각과 결석이 거의 없다. 학생이면 당연한 것 아니냐 싶겠지만 지난 학기에 할머니가 두 번 돌아가신 학생이나, 차 타이어가 세번 펑크 난 학생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 맞다.

이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경청한다. 강의 시작하고도 몇 분씩 늦게 들어와 웬만하면 교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뒷자리에 슬쩍 앉곤 하는 어린 학생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또 대부분 겸손하고 진지하다. 불타는 학구열에 비해 실행의 속도가 다소 느리긴 하지만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 있으면 묻고 또 물어서 되도록 실수를 줄이려고 하는 연륜도 보인다.

마케팅이라는 매우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는데 있어서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자신들의 사회생활 경험을 나누고 학우들의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알고 오는 이런 학생들은 그래서 대부분 좋은 학점을 받는다. 세 장만 쓰면 되는 페이퍼를 다섯 장씩 빽빽이 써 내는 학생들에게 내용과는 상관없이 노력 점수가 가산되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 학기에도 두 명의 베테랑 학생들이 내 강의를 신청했는데, 벌써부터 대단한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벌써 강의 계획서 관련 질문들을 이메일로 보내오고, 강의 첫날 왜 이 수업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본인들의 확실한 계획과 포부를 자신있게 발표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왕 가는 길 빨리 가자고 서둘러 학교를 마치고 서둘러 일을 시작한 내가 이들을 통해 느끼는 점이 많다. 목적지에 도착이 좀 늦으면 어떤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늦어서 더 풍성할 수 있는 인생임을, 젊은 교수는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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